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20년 전쯤이었나, 혼자 밥을 먹는 게 눈총의 대상이던 시절에도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는 척, 책을 읽는 척하며 밥을 빨리 씹었다. 물론 누가 본다고 목덜미가 간질거리긴 했다. 하지만 그런 시선보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대인기피증과 개인주의가 절반씩 섞인 기질로, 사람보단 생각을, 대화보단 침묵을 택해왔고, 그건 어쩌면 선택이었고 동시에 성격이기도 했다. 생각하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일은 나에게 혼자 있을 때만 가능했다. 혼자는 나에게 자유였고, 깊이였고, 보호였다.
그런 나에게도 부작용은 있었다. 나를 지키는 세계는, 때로는 나를 가두는 성이 되었다. 혼자의 시간은 무해하지만, 너무 오래되면 유연함을 잃는다. 의견이 다르면 싸우는 게 아니라 아예 접촉을 끊는다. 나에겐 아무래도 괜찮은 건 아주 괜찮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는 웃자고 던진 말에도 죽자고 달려든다. 나는 내 마음이 단단해질수록 어떤 감정은 둔해지고, 어떤 감정은 지나치게 예민해진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게 문제였다. 선명해지려다 날카로워지고, 단단해지려다 뾰족해지는 일.
요즘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느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다닌다. 모두가 각자의 세계를 지키고, 간섭하지 않고, 친절하게 타인을 무시한다. 그건 어느 정도 나와 닮은 사람들이 늘어난 걸 의미하지만, 딱히 반갑지는 않다. 닮았지만 차갑다. 조용하고, 섬세하고, 피로해 보인다. 어떤 날은, 지하철에서, 편의점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그들의 피곤한 침묵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몇 해 전,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아이를 씻기며 기운이 빠져가고 있었는데, 옆자리 할머니가 힐끔힐끔 나를 보더니 애기 엄마, 이리 오라고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어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분은 내 등을 밀어주셨다.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 손길은 오래된 솜이불 같았다. 따뜻한데 약간 낡아서, 더 편안한. 아무 말 없이 등을 밀어주셨다. 개운해진 내 등에선 뜨거운 물보다 뜨거운 것이 흘렀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부끄러워서 울지 않는 척하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 이후 나는 등을 밀어주는 사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다정은 참 조용하고, 느닷없이 오며, 때로는 낯선 사람을 통해 더 깊게 온다는 걸.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배려하고 돕는 사람이 가진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믿는다. 차가운 세계를 걷더라도, 한 손은 따뜻한 사람의 것을 쥐고 있고 싶다. 내가 너무 고집스러울 때, 너무 자기중심적일 때, 어떤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는 손길’로 나를 깨워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의 자유로움과 함께의 따뜻함을 모두 아는 사람. 그러기 위해 오늘도 조용히, 내가 닫아두었던 감정을 다시 펴본다. 다림질하듯, 한 주름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