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 아이와의 약속을 깨고야 말았다

by 이손끝


ChatGPT Image 2025년 7월 28일 오후 02_29_52.png



여름휴가를 위해 사흘을 비워뒀다. 짧지만 이번엔 꼭 가자고 마음먹었다. 사업을 시작하고는 초창기라 일에 정신없이 매달리느라 못 갔고, 지난해엔 둘째가 태어나면서 휴가를 갈 수 없었다. 올해는 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작년 여름, 큰아이가 팔짱을 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지금은 아기가 작으니까 안되고 내년엔 꼭 놀러 가자.” 그 배려심 깊은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미리 예약을 했다. 수영장이 있는 조용한 펜션. 아이가 물속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시댁에 다녀온 주말, 둘째가 기침을 시작하더니 열이 올랐다. 열세 달 된 작은 몸이 축 늘어지고, 밤엔 38도를 넘어섰다. 나는 새벽에 체온계를 들고 아이의 손을 꼭 쥔 채 눈을 떴다. 나도 감기가 옮아 몸살이 나버렸다. 온몸이 아프고 축 처져서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러다 어젯밤에 결국 예약을 취소했다. 화면에 뜬 위약금을 보며 한참 멍해졌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아팠던 건, 자려고 누운 이불속에서 조용히 등을 돌린 큰아이의 훌쩍임이었다.


작년에도 휴가는 없었다. 신생아인 동생 때문에 여행을 양보했던 큰아이는 올해만큼은 당연히 함께 떠날 거라 믿었다. 약속이란 게 원래 이런 걸까. 지키고 싶어도 지켜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남는 건 말보다 표정이다. “올해는 간대 놓고...”라고 말하는 큰애를 아빠가 나무랐다. 아가랑 엄마가 아픈데 노는 게 중요하냐며. 알겠다고 대답하는 큰아이의 작은 목소리보다, 그 뒤에 남는 쓸쓸한 웃음이 더 오래 머문다. 나는 그런 얼굴을 보면 무너진다. 일하는 엄마라서, 늘 시간을 나누고 조각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겼는데, 아이의 여름이 줄어드는 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일을 그만두면 나아질까. 가끔은 생각한다. 아이 옆에만 머무는 엄마가 되면 덜 미안할까.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게 하면 나는 더 쉽게 무너질 거란 걸. 일하는 시간은 나를 버티게 한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다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균형이 자꾸 흔들린다. 일하는 엄마의 여름휴가는 늘 이런 식이다. 짧은 사흘조차 내 것이 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나는 그 틈에서 아픈 작은 아이를 꼭 안고, 열이 오른 이마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이번 여름은 또 이렇게 지나가겠지. 수영장도, 튜브도, 신이 난 웃음소리도 없이. 대신 약봉지와 체온계, 젖은 수건이 남았다. 그게 이 여름의 기록이다. 나는 그 기록 속에서 아이에게 사랑받는 엄마였을까. 아니면 사랑을 보여준 엄마였을까. 훌쩍이다 잠든 큰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다짐한다. 내년엔 꼭 가자. 이번 여름을 흘려보내며 또 마음에 새긴다. 다짐은 미뤄질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지켜진다고 믿는다. 원 없이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며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년엔 너와 나, 그리고 아빠와 너의 동생이 웃으며 물놀이를 하는 여름을 맞자.



keyword
이손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154
작가의 이전글남의 등을 밀어주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