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예쁘게 하면 복이 온다고들 한다. 말을 잘하면 공짜라는 말도 있다. 어른이 되면 사람은 적당히 좋은 말, 둥글게 미소 짓는 말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예쁜 말을 배우지 못했다. 말보다 먼저 배운 건 침묵이었다. 나는 유치원 무렵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고, 그전에 이미 집은 전쟁터였다. 밤마다 비명이 있었고, 폭언과 폭력이 있었고, 주먹과 칼날이 날아다녔다. 친척 어른들이라고는 몰려와서 말린 게 아니라 같이 싸웠다. 그것이 어린 나의 언어환경이었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귀엽다는 말, 예쁘다는 말, 잘했다는 말보다 더 익숙한 말은 ‘꼴 보기 싫어’, ‘도대체 누굴 닮아서’, ‘너 때문에’였다. 나는 본성이 여린 사람이었고, 그런 환경은 나를 너무 빨리 얼게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마음을 말로 꺼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적 도구였다. 감정을 싣기엔 어색하고 겁이 났다. 무슨 말로 내 마음을 전하면 되는지 알지 못했고, 침묵으로 나를 지키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걸 먼저 알아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다행히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았다. 10대 시절, 몇 번이나 알 수 없는 순간에 불현듯 죽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지만, 그냥 시간의 무게에 밀려 지나왔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다. 신랑은 내 모습 자체를 감싸주었다.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애칭’으로 부르거나, 예쁜 표현을 꺼내거나, 감정을 담은 말을 건네는 것이 어색하다. 내 말투는 무뚝뚝하고 건조하며, 정중한데도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은 훈련받지 못한 언어습관이자, 내 성장기 전반의 ‘결핍’이 만들어낸 문장 스타일이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여자는 애교가 있어야 사랑받는다고. 애교 많은 며느리를 원하셨던 바람이 담긴 말이었지만 난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싸하게 비었다. 나와는 반대로 애교가 많은 시어머니는 이혼 후 재혼을 잘하셨고, 사랑받으며 인생을 살고 계셨다. 반면 그 아들인 내 남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 없는 가정에서 조숙해져야 했지만. 누구나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지만, 내가 참을 수 없던 건 그 ‘예쁘게 꾸며진 말들’이 진심처럼 보일 때였다. 나는 예쁜 말이 전부라고 믿지 않는다. 말 한마디가 기분을 좋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잠깐 달콤하게 녹는 사탕발림인지, 오래도록 싱그럽게 남는 진심인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준다. 나는 후자의 말을 하고 싶다. 아직도 익숙하진 않지만, 그렇게 오래 싱그러운 말, 살아 있는 말, 감정의 뿌리가 닿아 있는 말을 하고 싶다.
예쁜 말은 예쁜 마음에서 온다지만, 나는 예쁜 마음이 꼭 유순하거나 환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픔을 견디면서도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 내가 다치고도 여전히 고운 말을 하려는 마음. 그런 마음에서 오는 말은 단단하고 따뜻하다. 나는 아직 그런 말을 잘 못하지만, 그런 말을 배워보고 싶다. 어쩌면 이제야 조금씩 말에 감정을 담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뚝뚝하게 내뱉는 말에, 조심스럽게 감정을 묻히는 중인지도.
나는 아직 예쁜 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말을 하고 싶다. 사탕보다 뿌리 깊은 생강차 같은 말. 처음엔 낯설고 매울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위로가 되는 말. 그런 말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나도 너를 많이 사랑한다고. 아주 많이,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