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심하고 가볍게 이야기하자.

by 이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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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쾌하고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말끝을 흐리지 않고, 재치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고 요점을 찌른다. 나는 늘 그 반대편이었다. 진지하고, 흐릿하고, 감정이 앞서고, 부연 설명이 길다. 한 문장을 쓰더라도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거기엔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그 감정이 어떤 철학과 닿아 있는지 곁들여야 마음이 놓였다. 말하자면 나는 자꾸 돌아가는 길로만 걸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훑었다. 거기엔 내 얼굴이 있었다. 늘 나를 중심으로, 나의 시선과 나의 아픔과 나의 울림만으로 쓰인 글들. 그것이 처음에는 필요했던 작업이었다고도 생각한다. 마중물처럼, 글쓰기의 시작은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독백을 넘어서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었다. 읽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나를 쓰고 있었지만, 독자는 그 안에서 얻을 게 없었다.


나는 남의 콘텐츠를 볼 땐 말이 많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뭔가 얻고 느낄 것이 있어야 한다고 떠들면서 정작 내 글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유아적인 감상에 젖어, 문장의 촉촉함만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도 재미도 없고, 누군가에게 말 거는 법조차 잊은 글들. 혼자에게만 향한 손 편지.


브런치스토리의 당선작들을 봤다. 대단한 문장력은 없었다. 그런데 살아 있었다. 주제가 선명했고, 사건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주제와 기획이 이야기의 구심점을 잡고, 그 안에서 작가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내 속으로만 내려가고 있었다. 누가 그 긴 터널 속을 같이 걸어가고 싶을까.


물론, 자기 연민은 글쓰기의 마중물이다. 한때는 나도 그게 필요했다. 쏟아내야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기를 견디기 위해, 쌓인 것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제 그만 보내자. 충분히 묵었고, 충분히 울었다. 이제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할 때다. 다시,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나는 어떤 글을 좋아하는가. 하루의 피로가 날아갈 만큼 웃기거나, 나도 몰랐던 감정을 알아채게 하거나. 결국 의미 거나 재미다. 아니면 둘 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그런 글을 써야 한다.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그게 없으면 안 써도 된다. 이제부터는 자기 연민을 내려놓는다. 그 감정은 진실했지만, 이제는 무겁다. 무심하게, 가볍게. 그리움도 웃으며 말하고, 슬픔도 건조하게 말하고, 서사를 정리하고, 구조를 세우고, 기획을 단단히 하자. 문장의 울림보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 말하느냐다. 이제는 듣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쓰자. 그리고 이야기하자. 읽는 사람도 살짝 웃게 만드는 그 한 문장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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