運, 옮길 운. 命, 목숨 명.
運, 옮길 운. 命, 목숨 명.
운명은 목숨이 옮겨지는 거라 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진짜 ‘운(運)’이고, 그 방향을 결정짓는 게 바로 ‘명(命)’이라면, 우리는 매 순간 살아 있는 생명을 어디론가 옮기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운명은 단지 태어날 때 정해진 설계도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계속 움직여 만들어내는 어떤 방향성 같은 것이다. 지나고 나서야 어쩐지 이해가 되는 것들. 한참을 돌고 헤매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퍼즐처럼 맞춰지는 일들. 나를 밟았던 것들이 발판이 되고, 나를 밀어낸 것들이 숨 쉴 틈이 되기도 하고.
예전엔 일이 틀어지면 내 잘못이거나 세상이 불공평해서라고 여겼다. 진행하려던 프로젝트가 계속 꼬이고, 관계자와 말이 어긋나고, 그날따라 메일함도 늦게 열리고, 핸드폰도 고장 나고, 온 세상이 '이 일 하지 마'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도, 나는 오기로 끌고 갔다.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진심이면 되겠지, 그런데 결과는 항상 비슷했다. 억지로 밀고 간 길 끝엔 파국이 있었다. 허탈함, 무력감, 그리고 나만 남는 결과.
관계도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땐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 그러나 이상하게 마음이 안 놓이고, 얘기를 나눠도 깊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 웃고 있지만 내심 피곤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불편한. 그런 관계는 아무리 매력적이고 좋아 보인다 해도 끝내는 파국이었다. 반면에, 별 기대 없이 시작한 인연이 나를 툭 치듯 다가와 의외의 온기를 주고, 물 흐르듯 흘러서 결국 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해되지 않던 이별도, 돌아보면 나를 위한 정리였고, 그 자리에 더 나은 누군가가 들어올 준비였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운(運)’은 바뀌고, ‘명(命)’은 다시 쓰인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단순히 상황과 감정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는 걸, 나는 안다. ‘처음부터 느낌이 이상했어’라는 말은 뒤늦은 합리화일 수도 있고, ‘힘들었지만 결국 좋아졌어’라는 고백은 그간의 갈등과 묵힘의 시간을 간과하게 만든다. 때론 그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는. 그 사람도, 그 일도, 그 선택도. 마치 예전엔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 놓친 길이, 지금은 나를 다시 불러주는 것처럼. 그렇게 운명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계절처럼, 강물처럼.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 ‘운명’은 반드시 지금 당장 의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일관성보다 방향성에 가깝고, 정답보다 태도에 가깝다는 걸. 운명을 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고, 다만 매 순간 진심이었는지, 신중했는지만 묻고 또 묻는다. 가끔은 억지로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용기를 배우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성실히 존재하려는 연습을 하며. 운명이란 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그렇게 사소한 선택의 조각들일지도 모른다.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누고, 어떤 식으로 걸어 나왔는지. 그날의 표정, 그날의 말투, 그날의 마음으로 운명은 매일 다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