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사람 인(人), 성품 성(性).
인성. 사람의 타고난 성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누가 사람을 그렇게 한자로 써 내려가듯 금방 읽을 수 있을까. 나는 한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 보는 눈’은 있었는데, 그게 ‘사람 전체’를 보는 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멋진 외모, 좋은 말에 쉽게 마음이 갔고, 정에 약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금세 마음을 열었고, 그들이 무심하거나 어리광을 부려도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감쌌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말은 입에만 있었고, 그들의 감정은 오직 자기중심이었다는 걸. 이용당했다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까 봐 삼켰던 수많은 순간들. 다 지나서야, 다 지나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들을 너무 빨리 ‘좋은 사람’이라 정해버렸다는 걸.
몇 번의 사귐과 이별을 거치며 나는 사람 보는 안목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혼은 자신이 없었다. 사람을 안다는 게, 함께 살아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몇 번이고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친언니와 형부가 말했다. 거래처에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번 만나보라고. 내가 피식 웃었던 건, 소개받는 자리라는 게 왠지 모르게 로맨스가 없는 느낌이라서였다. 게다가 그 사람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투박하고, 말도 적고, 유머도 없고. 그래서 사실 첫 만남부터 호감은 없었다. 근데 이상했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의 내가 아니라, 남을 대하는 태도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어딜 가든 인사 잘하고, 주문은 또박또박 존댓말로 하고, 어른이 말하면 듣고, 말이 없어도 적당한 웃음으로 반응을 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은 나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잘해준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정한 존중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믿기로 했다. 자기감정에 따라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 그래서 결혼했다. 살아보니, 그 선택은 옳았다. 남편은 나이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도 주변인들과 관계가 좋았다. 생일마다 선물 쿠폰을 20개가 넘도록 받는다. 아는 사람, 모임, 친구, 거래처. 전부 그가 마음을 다해 대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그걸 보며 문득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떠오른다.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반말하던 사람. 어딘지 모르게, 거슬리지만 설명하기 애매했던 그 무례함. 말이 공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존중이 없었던 것. 그걸,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사람을 판단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긴 시간보다 찰나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구는 여행을 함께 해보면 본성이 드러난다 하고, 누구는 급박한 상황에 몰려보면 안다고 하고, 누구는 운전대를 잡았을 때 본색이 드러난다고도 한다. 물론 이 말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사람이 ‘자기보다 약자’에게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자존심이 없는 자리에, 자기 권위로 올라타려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하느냐보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게 인성이다. 사람의 성질은, 가장 무심한 자리에 가장 정확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