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
병맛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가벼운 농담쯤으로 여겼다. 약 15년 전, 대학입시 글쓰기 모임에서 매주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합평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 모임에 있던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저는 근엄하고 진지한 글은 싫어요. 병맛이 좋아요.” 그 말에 다들 웃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그녀의 글은 어디로 튈지 모르게 재치 있었지만, 묘하게 공허함이 남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유머가 자꾸 끼어들어 글을 가볍게 만들었지만, 진심을 다룬 문장의 묵직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절엔 병맛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여자아이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취향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의 콘텐츠 흐름을 보면 병맛 코드는 확실히 주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코드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병맛을 소비하고 나면 의미 없는 대화를 길게 나눈 뒤처럼 허전하다. 마음이 따뜻해지지도, 생각이 깊어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내가 고리타분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병맛 코드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얻는 해방감과 웃음의 가치를 이해한다.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뉴스도, 현실도 무겁다. 그런데 콘텐츠마저 무겁다면 숨 쉴 틈이 없다. 병맛은 그런 틈새를 파고든다. 무의미해 보이는 농담 속에서 오히려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자유를 제공한다. 웃음이라는 건 그 자체로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한다. 내 글은 어떻게 의미와 재미를 함께 담아야 할까. 병맛처럼 툭툭 튀는 유머는 아니더라도,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결을 만들고 싶다. 동시에 읽는 사람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울림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직도 병맛 콘텐츠를 보면 당황스럽다. 익숙해지려 노력하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내겐 낯설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취향도 변한다. 언젠가 나도 그 웃음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그때가 오면, 병맛과 의미가 섞인 글을 쓰는 법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날까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와 재미가 공존하는 문장을 찾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