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결혼(結婚). ‘맺을 결(結)’, ‘혼인할 혼(婚)’. 두 글자는 본래 실로 묶어 매듭을 짓는 일과 혼인을 뜻하는 고유한 약속을 품고 있다. 한자로 풀어보면 ‘두 사람의 인연을 매듭짓는 일’이자 ‘서로 다른 삶이 하나로 엮이는 약속’이라는 의미가 된다. 단순히 같이 사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기로 굳게 묶는 행위다. 나는 이 글자를 볼 때마다 내 결혼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게 잘한 선택이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 없이 시작했다. 서로 모은 돈은커녕 작은 빚까지 있는 상태였지만, 서로 의지하며 성실히 살아가면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손을 잡았다. 작은 원룸에서 살림을 꾸렸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했다.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두 딸을 낳았고, 작년엔 집도 장만했다. 자산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크고 있다. 기적처럼 감사한 일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매듭이 있었다. 같이 웃으며 묶은 매듭도, 차마 풀지 못해 울며 겨우 묶은 매듭도. 하지만 모두 결혼이라는 하나의 굵은 줄 위에 이어져 있다.
우리 부부는 무뚝뚝하다. 다정한 말이나 제스처를 자주 주고받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함께 일하니 늘 옆에 붙어 있어 공기처럼 편안하다. 나에겐 그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정을 지탱하는 동반자다. 나나 남편은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홀로 가정을 이끌며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힘겨워하는 아버지 곁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싸워야 했던 나, 청소년기에 집을 나와 거친 사회생활을 했던 남편. 우린 가끔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지금의 안정감이 얼마나 귀한 건지를 되뇐다.
나는 어린 시절엔 철이 든 척하느라 마음 놓고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갈 때, 사랑보다 안정감을 우선했다. 지나고 보니 그 차이는 명확했다. 연애를 끝내고 떠난 사람들은 내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돌쇠처럼 말이 없고 묵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매력이 덜했지만, 말수도 없는 사람이 입버릇처럼 툭툭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속는 셈 치고 결혼했는데 그는 그 약속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며 안정감 있게 지키고 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나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떠오르는 건 두 사람뿐이다. 아버지와 남편. 피가 섞이지 않은 남편이 과연 그래줄 수 있을까? 뒤돌아서면 남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인데? 그런데도 나는 단정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진짜로 나를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이라고.
그의 이유는 날 향한 사랑뿐만은 아닌 걸 안다. 그는 가정과 아이들이 삶의 전부인 사람이라, 아이들이 엄마 없이 사는 건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꼭 살아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날 사랑해서가 아니냐며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 말이 기뻤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아이들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티끌만큼의 틈도 없이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진심을 변치 않고 포개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결혼이란 결국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향한 로맨틱한 사랑은 줄어들어도 괜찮다. 결혼하면 자기에서 동지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때론 서운하고 미울 때가 있어도 좋다. 사람은 좋다가도 밉고, 밉다가도 좋아지니까. 백번 밉다가도 한번 좋으면 살아지니까. 또 가장 중요한, 내가 목숨보다 아끼는 아이들의 아빠가 당신이라는 사실이 모든 미운 걸 덮는다. 결혼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라는 하나의 매듭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잘 묶여있는 결혼의 매듭이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