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브로커라는 단어에는 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게 익숙한 그 단어는 합법보다 불법에 가까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뉴스 사회면 기사 속에서, 혹은 어두운 뒷골목의 대화 속에서만 들리던 단어였다. 늘 법망을 피해 가거나 누군가의 약점을 붙잡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이들. 그래서 나는 그 단어를 뉴스나 영화에서나 봤다. 내 일이 아무리 대행의 성격을 띠고 있어도, 스스로를 브로커라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불쑥 내 앞에 떨어진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고객이 선택한 판촉물의 시안을 작업하고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던 중, 상품 보유처에서 재고가 조금 부족하다는 연락이 왔다. 상황을 전하자 고객은 언성을 높였다. “재고도 없으면서 견적을 내요? 만들어서라도 맞추세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중국 거래처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당장은 불가능하다고. 그때 돌아온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뭐야, 브로커였네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단순히 중개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의 요구를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인쇄소의 기술적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다. 인쇄소와 고객 사이, 도매처와 고객 사이, 그 복잡한 결을 조율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역할은 ‘브로커’라는 단어 하나로 단순화되었다. 책임은 지지 않고 마진만 챙기는 존재, 사기를 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사전은 브로커를 단순히 ‘중개인’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사회는 늘 그 단어에 부정적 그림자를 덧칠했다. 조선 말기, 개항 이후 외국 상인과 조선 상인 사이를 잇던 중간상도 브로커라 불렸다. 그들은 외세의 이익을 대신 챙긴다고 욕을 먹었지만, 동시에 없으면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존재이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 브로커는 더욱 음지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의료 브로커, 취업 브로커, 입시 브로커. 단어가 붙는 순간 불법과 비리가 따라붙는다. 고객의 말은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사회가 씌운 오랜 낙인을 내게 던진 셈이었다. 순간 서운함이 아니라 모욕에 가까운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본질적으로 ‘중간자’의 자리며, 중간자는 곧 브로커라는 것을. 고객은 더 싸게, 더 빨리, 더 완벽하게를 원한다. 인쇄소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원가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해답을 찾는 건 고스란히 내 몫이다. 누군가의 불만을 들어도, 투정을 받아도, 결국 결과물을 내야 하는 건 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누군가 건너야 할 길을 이어주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연결한다.
결국 문제의 상품은 보유된 재고로 제작해 납품했다. 고객은 결과물에 만족했고, 예쁘다며 사진까지 보내왔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가 남긴 생채기는 오래 욱신거렸다. 다만 나는 그 상처를 긍정으로 바꾸었다. 단어는 타인이 정하지만, 그 단어 안에서 어떤 의미를 살아내는지는 내 몫이니까.
나는 브로커라는 단어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 다시 묻더라도 담담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브로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래를 이어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다. 나를 규정짓는 건 단어가 아니라, 내가 쌓아 올린 다리 위를 건너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브로커라 불린 날은 내게 상처였지만, 동시에 내 일을 다시 바라보게 한 계기였다. 어쩌면 모든 다리 놓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렇게 불릴지도 모른다. 다리는 늘 건너는 이를 위해 존재하고, 그 위를 누군가 무사히 지나갔을 때야 비로소 빛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리를 놓는다. 언젠가 내 다리를 건너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거라는 희망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