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라는 저울 위에서

양심

by 이손끝

내 사무실 앞 고깃집에는 오래 전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문구가 붙어 있다.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겠습니다. 양심저울을 사용하겠습니다. 얄팍한 상술로 우롱하지 않겠습니다.” 간판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저 문장은,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양심(良心). 곧 ‘바르고 착한 마음’이라 해석되지만, 한자로는 더 깊은 뜻이 있다. 곡식을 재던 저울처럼, 자신이 내리는 선택과 행동을 바르게 달아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역사 속에서도 양심은 늘 가장 단단한 무기였다. 맹자는 ‘인(仁)’과 ‘의(義)’의 뿌리를 양심에서 찾았다. 조선 시대 사헌부와 사간원은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을 따라 바른 말을 하는 기관이었는데, 그 정신은 “나라가 바로 서려면 양심을 따르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양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권력보다 강했고, 때로는 시대의 흐름마저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떠한가. 사업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늘 시간과 수익의 계산 속에 살아간다. 글 한 편을 쓰는 것도, 고객과의 상담 하나도 결국은 돈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놓치기도 한다. “돈 버는 자아와 살아가는 자아는 다르다”라며 자아를 갈아 끼우듯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내 사업의 방향이어야 한다. 일은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과정이다. 가볍게 요령을 부려도 당장은 티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저울이 기울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가 온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하는 이 결정이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가. 언젠가 아이들이 내 발자취를 돌아볼 때, 내가 걸은 길이 부끄럽지 않을까.


양심은 법보다 먼저 존재하는 규칙이다. 법이 허용해도 양심이 거부하는 일이 있고, 법이 규정하지 않아도 양심이 막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 고객에게 정직하며, 눈앞의 이익보다 긴 호흡을 택하는 일. 그것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결국은 신뢰와 존경이라는 더 큰 가치를 남긴다.


고깃집 앞 문구는 단순히 장사의 다짐이 아니라 내 삶의 거울이 되었다. 오늘도 그 앞을 지나며 마음속 저울 위에 나를 올려본다. 혹여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균형을 잡고 있는가. 느리더라도, 때로는 손해 같더라도, 양심 위에서 걷는 길이라면 언젠가 아이들이 내게 배울 수 있는 길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양심을 속이지 않는 하루, 그것이 곧 내 삶과 사업을 지켜내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라고.


KakaoTalk_20250818_105923448.jpg 양심이라는 저울


이손끝은 일상 속에서 감정을 건져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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