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과 유머 사이에
나는 좀 어중간한 사람이다. 태생적으로 고지식하고 진지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삶이 무언지 고민을 했던 것을 보면. 그런데 또 나름 유머 감각이 있어서, 한때는 코미디언 시험을 볼 정도로 웃기는 쪽에도 욕심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그랬다. 나만 나타나면 교실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친구들은 괜히 웃음부터 터뜨리곤 했다. 졸업앨범 촬영하던 날, 사진 기사님이 “좀 웃으라”라고 했는데, 다들 예쁜 표정을 짓느라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기사님 뒤에서 익살을 부리자 친구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장면은 앨범 속에 예쁘게 남았고, 지금 보면 약간 흑역사 같으면서도 그때의 내가 자랑스럽다.
그런데 20살이 넘으며 사회에 던져진 순간 '생존' 혹은 '실존'의 문제에 부딪혔고, 나는 달라졌다. 웃기던 내가 사라지고, 너무 진지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하나둘 “너 왜 이렇게 재미없어졌냐”며 나와 거리를 두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내 태도의 균형이 깨진 순간,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져 버렸다. 내 진지함은 늘 과했다. 그렇다고 고고한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학문적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적인 대화 자리에서도 껴들지 못하고, 가볍게 웃자니 나답지 않은 것 같아 망설이게 됐다.
그런 나 자신이 답답했다. 나는 나름대로 내 생각을 매력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사유를 쌓아가며 글을 썼다. 내 방식대로 정의하고 정리해서 멋지고 독특한 나만의 사유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내놓고 보면, 대단한 학자나 예술가들의 생각 앞에서 내 세계는 너무 뻔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들의 문장은 빛나는데, 나는 그저 자기 연민과 감상 속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글이라니. 이래서야 누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까 싶었다.
문득 떠올린다. 내가 예전에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가진 유머는 없어지지 않았을 텐데, 내가 스스로 가둬버린 건 아닐까. 유머는 가벼움이 아니라 생기다.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지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진지함에 눌려 그걸 잃어버렸다.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 ‘생기가 없는 사람’이란 말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조금씩 다시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학자처럼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없다 해도 괜찮다. 대신 솔직하게 내 일상에서 발견한 고민과 웃음을 전하면 된다. 생기를 잃어가면서도 만들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뭣이 중한가. 그런 물음 앞에 섰다. 그래. 좀 편하게 살자, 나답게 말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멋지지 않아도, 어딘가 닮은 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닿을 수 있으니까.
내가 재미없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순간,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내 안의 진지함과 유머는 본래 공존해 왔다. 졸업앨범 속 친구들의 웃음이 그 증거다. 내가 다시 찾아야 하는 건 화려한 재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끌어낼 수 있는 작은 생기다. 진지한 나와 웃긴 나, 그 사이에서 조금은 어설프게 흔들려도 괜찮다. 그게 바로 나이니까.
이손끝이 일상 속 사유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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