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 하루가 다르게 꿈이 바뀌던 소녀였다. 어릴 적 나는 조용했지만 호기심이 많았다. 가만히 있으면 머릿속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왜 하늘은 파란색일까, 왜 불의 색은 여러 가지 일까, 불은 물엔 붙지 않고 종이엔 붙을까? 어느 날 그 궁금증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벽지 한쪽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다. 그때 거실 한쪽이 시커멓게 그을렸고, 나는 크게 혼났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에서 본 SM 아역 탤런트 모집 광고에 전화를 걸어본 적도 있다. 애기가 전화를 거니 좀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던 게 기억이 난다. 대본을 직접 써서 혼자 1인극을 하며 무대에 오르는 상상도 했다. 예술적인 호기심은 결국 나를 연극부로 이끌었고, 중·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연예인’이었다. 무대 위에서 환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때는 가장 자연스러운 미래였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대학 입시에서 낮은 내신 때문에 가고 싶은 학교엔 갈 수 없었고, 일단 보류하기로 하며 나는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픽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인쇄소에 들어가 편집일을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미술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며 감각을 쌓아갔다. 다만 어디까지나 독학으로 얻은 감각이었기에 늘 어딘가 부족함을 느꼈다. 클레임이 들어올 때면 마음 한쪽에서 ‘내 길이 이게 맞을까’라는 질문이 자라났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또다시 무대 위의 나였다.
나는 한 가지 길만 걸어오지 않았다. 중간중간 다른 방향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을 꺼내놓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었고, 그래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연기학원에 등록해 무대에 서고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취득한 민간 자격증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그중엔 쓸 데가 없는 것도 많지만, 그 시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잠깐은 방과 후 독서논술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인기 과목이라 학생 수가 적었고,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 오래 할 수 없었다.
결국 또다시 돌아온 곳은 편집 일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직원이 아니라 사장으로. 내 이름을 걸고 회사를 차리고, 지금도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찌라시 디자이너’라 부르며 박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만둘 수 없다. 이건 내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여전히 다른 상상을 한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내 모습. 그 그림은 내 미래일까, 아니면 날 망치려는 환영일까. 내 자리가 어디기에 내 마음은 늘 현실을 두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걸까.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과 완전히 동행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이진 않다. 오히려 희미하지만 분명한 직감이 있다. 내가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필요에 맞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 그 안에 내가 그토록 찾던 길이 숨어 있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흩어져 있던 내 경험과 시도들을 하나로 꿰어 보니 비로소 의미가 보인다. 내가 괜히 헤맸던 게 아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니 그 안에 ‘진짜 나’가 드러났다. 나는 늘 겁이 많았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선뜻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렇게 긴 시간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자격증도 있고, 경력도 있는데, 정작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이유는,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다르다. 지난 시간의 흔적이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나는 결국, 나다.” 그 단순한 사실이 길이 된다.
여전히 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진다. 현실의 나와 꿈꾸는 나, 안정적인 길을 원하는 나와 자유롭게 날고 싶은 나. 그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왔다. 때로는 자격증과 경력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취가 나를 지탱해 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책임감 있게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얼굴, 다른 하나는 무대 위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 예술가의 얼굴.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 두 얼굴이 함께 있어야 내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한 번도 완벽히 길을 잃은 적은 없었다. 늘 돌아갈 곳이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언제나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 글로든, 디자인으로든, 심지어 실패한 연극 수업의 기억으로든, 나는 내 안의 것을 꺼내놓아야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 진로는 결국 그 표현을 계속 이어가는 길에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조금은 알겠다. 진로는 거창한 목표나 직함으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진로다. 나는 고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필요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며 삶의 의미를 느낀다. 때로는 글을 쓰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내 안의 감정을 문장으로 남기며 ‘아, 이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 두 가지가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 나이 마흔.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의 방황과 시행착오가 모두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흩어진 구슬을 꿰듯, 흩어진 경험을 모으니 보이지 않던 의미가 드러났다. 자격증과 경력은 그저 이력서에 적는 줄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최근에 나는 마케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런 내 모습이 흥미로우면서도 불안하다. 나는 계속 또 다른 상상을 하고, 또 다른 길을 그리며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나를 망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나를 지키면서 흔들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흔들림은 곧 움직임이고, 움직임은 결국 길을 만든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그것이 바로 나의 진로일 테니까.
이손끝의 브런치북 연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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