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것엔 흔들리지 않는다.

각자의 복, 각자의 몫

by 이손끝

어제는 미국에 있던 시누이가 2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모여 얼굴을 보는 자리였는데, 결혼한 남편과 함께 왔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늦게 만난 인연이었고, 식도 소박하게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 아이는 없이 둘이 살기로 했단다. 미리 통화로 인사하고 만나다 이번에는 한국 어른들에게 인사차 귀국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본 시누이의 얼굴은 활기가 넘쳤다. 사랑받으며 사는 사람이 가진 특유의 빛이 있었다.


시누이는 남편이 프러포즈할 때 했던 약속을 자랑처럼 들려주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5년 넘도록 그 약속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일도 모두 남편이 도맡아 하고, 음식도 다 차려주며, 빨래와 청소까지 다 해준다고 했다. 심지어 도시락까지 직접 싸준다고 하니, 듣는 내가 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지극정성’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부럽다고 이야기하자 멀찍이 내 표정을 살피던 남편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동생을 다그쳤다. 나는 남편을 살짝 흘겼지만 사실 장난이었다. 부러운 것은 맞지만 그뿐이다. 순간적으로 ‘왜 나는 이런 대접을 못 받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곧 마음속에서 그 생각은 힘을 잃었다. 이미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는 지금, 그런 비교는 무의미하다. 거기에 오래 머물면 불행해진다. 결국 각자 맞는 짝을 만난 것일 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라는 걸 안다.


시누이는 늘 화사하게 꾸미고 있었다. 머리카락에는 은은한 향이 배어 있었고, 얇게 바른 화장도 환했다. 말투는 부드럽고 애교 섞여 있었으며, 대화 내내 남편을 웃게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걸 잘하지 못한다. 예쁘게 꾸미고 향기를 입히는 데 서툴고, 애교를 부리기에는 성격이 너무 곧다. 차라리 무심하게, 심심하게 살아가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받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삶의 태도가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애교로 얻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심한 듯 곁을 지키며 사랑을 만든다. 시누이의 삶이 화려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시누이의 몫이다. 내 삶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꾸려간다고 해서 같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내 남편과 나만의 방식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때로는 덜 사랑받는 것 같아도,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더 편안해지는 부분도 있다. 그것이 내 삶의 균형이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게 있다. 부러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스치듯 찾아왔다가도 금세 가라앉는다. 예전 같았으면 속이 끓고 비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불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십을 넘기며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졌고, 내 것이 아닌 것에 오래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내 삶에 덧씌울 수 없는 무늬라면, 부러워도 소용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 중요한 건 나다. 내가 어떤 삶을 택하고 어떤 관계를 이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시누이의 삶은 시누이의 복이고, 내 삶은 내 복이다. 복의 모양이 다를 뿐, 가치가 크고 작음은 없다. 나는 덜 사랑받는 듯 살아가지만, 그게 내겐 오히려 자유다. 때로는 무심함 속에 더 단단한 신뢰가 숨어 있기도 하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버티고,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복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시누이의 말을 부러워하면서도 웃어넘겼다. 부러워하되, 욕심내지 않는다. 내 몫은 이미 충분하다. 내 남편이 가진 단점과 무뚝뚝함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그 안에서 쌓여가는 사소한 기억들,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켜야 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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