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기 위한 자세

생존(生存)

by 이손끝

‘살 생(生), 있을 존(存).’ 살아서 존재한다.




나는 요즘 ‘생존’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살아남는다는 건 단순히 생물적인 뜻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내 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전엔 생각했다.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놓으면 그 위에서 안정적으로 굴러가겠지. 나도 조금은 쉬어가며 일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 변화는 잠깐의 안도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익힌 기술은 내일이면 낡고, 어제의 방법은 금세 뒤처진다. 나는 또다시 배워야 한다. 마케팅, 알고리즘, 트렌드, 플랫폼. 이름만 들어도 지치는 것들 속에서 하루를 살아낸다.


하루의 끝,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나는 조용히 컴퓨터를 켠다. 불빛 하나만이 내 얼굴을 비춘다. 이 시간은 나에게 ‘생존의 시간’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사장이 아닌 오직 나 혼자만의 시간. 그러나 그 고요는 쉼이 아니라 투쟁에 가깝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피로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린다. 공부를 하고, 분석을 하고, 다시 수정한다. 그렇게 새벽까지 버틴다. 다음 날이면 다시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앉아 있다. 왜냐면 멈추는 순간, 내 자리는 사라지니까.


이 시대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시대다. 한 번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라는 순간 안에서만 유효하다. 어쩌면 지금의 생존은 유연함으로 정의되는지도 모르겠다. 바위를 뚫는 건 물이니까. 세상은 단단한 사람보다 물처럼 흐르는 사람을 원한다. 흘러야 산다. 어느 곳에 쏟아져도 그 형태에 맞게 스며드는 사람, 모양을 바꿀 줄 아는 사람, 딱딱하지 않은 사람.


솔직히, 가끔은 너무 피곤하다.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날들. 그저 내가 익힌 기술이 뾰족해진 대로, 익숙한 방식으로 살고 싶다. ‘생존’이라는 말이 주는 긴장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런 삶은 없다.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쉼 없이 변화해야 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 생존은 곧 ‘공부’이자 ‘적응’이다. 멈추면 사라지고, 흐르지 않으면 고인다.


나는 오늘도 물처럼 되려 한다. 흘러가되, 흐름 속에서도 내 온도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일의 방식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게 단단한 마음의 알맹이를 지키려 한다. 그것이 내 방식의 생존이다.


어느 날은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다. 내가 시도한 방법이 반응을 얻고, 작은 성취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다음 날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럴 때면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모든 날이 다를 뿐, 결국 그 모든 날들이 ‘생존의 날’이라는 걸. 그러니 실패도 과정이고, 지침도 생존의 일부다. 오늘의 버팀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 그건 결국 ‘변화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오늘도 그 정의를 연습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물처럼, 흐르듯, 그러나 사라지지 않게. 그렇게 오늘도, 나는 살아 내일을 준비한다. 생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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