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가 무너진 곳엔, 감정만 남는다.

무례(無禮)

by 이손끝


무례(無禮)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없을 무(無)’와 ‘예도 례(禮)’가 합쳐져 있다. 예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언제나 감정이다. 감정은 순식간에 번지고, 이성은 뒤늦게 도착한다. 사업을 하며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며칠 전 일이었다. 고객이 인쇄물 색상이 다르다며 연락을 해왔다. 문자로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답답하다’며 통화를 요청했다. 나는 흔쾌히 전화를 걸었지만, 첫마디부터 폭언이 쏟아졌다. “이게 뭐예요? 장난합니까?” 나는 침착하게 들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이해하려는 여유가 없었다. 내 안에서도 서서히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 말은 나름의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그 경계는 오히려 불씨가 되었다. “뭘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당신이 뭔데!”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탁 끊어졌다. 나는 언성을 높이진 못했지만 정제되지 못한 감정의 언어가 나왔고, 대화는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영락없는 하수의 모습이었다.


통화가 끝난 뒤, 머릿속이 하얘졌다. 고객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원본파일을 주지 않았고 복원 작업을 맡기곤 최종 체크하는 파일에서 컬러를 체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부분은 차마 유치해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팩트를 유치하다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건 오로지 감정이었다. 감정이 개입된 순간, 잘잘못은 의미를 잃는다. 남는 것은 오직 피로와 후회뿐이다. 결국 환불을 해주며 일을 마무리했다. 손해는 금액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그가 예의를 잃은 걸까.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예의는 일방의 책임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 속에서 지켜져야 하는 균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하면 몸이 먼저 굳는다. 사업을 하면서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착하게’ 참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예의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상황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기술이다. 그날의 나는 그 기술을 잃었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깨달았다. 흥분한 그 직원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메일로 대응했어야 했다. 문자와 메일 사이에는 감정의 속도를 늦추는 벽이 있다. 그 벽이 있으면 말의 온도를 조절할 시간이 생긴다.


‘무례’라는 단어를 곱씹는다. ‘없을 무(無)’가 붙은 이유를 생각한다. 아마도 예의는 본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기본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공기 같은 것. 그것이 사라질 때, 그 자리는 무(無)로 남는다. 그리고 그 무는 곧 싸움과 오해, 그리고 후회의 그림자가 된다. 나는 그날, 무례의 순간에 예의를 잃었다. 상대의 언어에 상처받고, 내 언어로 되갚으려 했다. 그러나 언어는 감정을 닮는다. 감정이 다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사업은 사람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진짜라는 걸 이제야 이해한다. 물건을 파는 일보다 어려운 건 마음을 다루는 일이다. 어떤 고객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어떤 고객은 작은 말에도 감동한다. 그 차이는 결국 ‘말의 예의’에서 비롯된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빠른 수단이다. 그날의 나처럼 감정이 섞인 말 한마디는 관계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


며칠이 지나도 그 통화가 떠오른다. 물론 금전적 손해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의 대응에 마음이 오래 불편했다. 예의를 잃은 건 고객이었는데, 후회는 나에게 남았다. ‘왜 그때 조금만 더 냉정하지 못했을까.’ ‘왜 바로 대응하려 했을까.’ 그 질문들이 며칠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예의란 결국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 아닐까.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여유, 말 대신 한숨을 택하는 순간, 그것이 예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대응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감정이 개입된 대화는 무조건 메일로 전환한다. 고객의 말투가 거칠어질수록 내 문장은 더 단정해야 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자, 관계를 지키는 예의다. 사업에는 수많은 매뉴얼이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 대응 매뉴얼’이었다. 상품의 품질보다 중요한 건 태도였다.


무례한 상황을 겪고 나서야 예의의 가치를 배웠다. 예의는 상대를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예의가 무너진 자리에는 언제나 후회가 자란다. 나는 그날의 통화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예의의 부재가 얼마나 큰 손해로 이어지는지를, 감정의 순간이 얼마나 빠르게 신뢰를 무너뜨리는지를, 나는 그날의 나로부터 배웠다.


무례는 결코 멀리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다. 다만 그 차이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누군가의 무례함 앞에서도 예의를 지킬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감정의 주인이 된 사람이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무례는 남의 문제처럼 시작되지만, 예의는 결국 내 몫으로 끝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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