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천재다. 하지만,

획일적인 기준의 잣대

by 이손끝


누구든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를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바보라고 믿으며 살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명절이라 가족들이 모여 갈빗집에 갔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가고, 연기 사이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섞였다. 집게를 쥔 내 손은 여전히 서툴렀다. 불 조절도, 뒤집는 타이밍도 번번이 놓쳐 고기가 까맣게 탄 게 많았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쟤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예전의 거친 말 대신 “완전 공주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여전히 같은 말로 들렸다. 바보라는 단어.


나는 둘째였다. 눈치 빠르고 이것저것 잘하던 언니와, 운동부라 사회생활이 야무졌던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늘 조용한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반응도 둔했고, 뚜렷하게 잘하는 것도 없었다. 집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농담처럼 던져진 “바보”, “병신” 같은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나는 생활적인 면에서 서툴다. 운전을 못해 마음 가는 대로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요리를 잘하지 못해 두 딸에게 늘 근사한 밥상을 차려주지도 못한다. 살갑게 말을 이어가는 재주도 없고, 꾸미는 데에도 관심이 적어 늘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닌다. 세상이 정해놓은 ‘능숙한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많이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이 전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더 아프다.


그 말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능력의 평가가 아니라 존재의 평가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선언처럼. 어릴 적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나는 늘 비교의 대상이었고, 늘 부족한 쪽에 서 있었다. 그 그늘 안에서는 어떤 다른 능력도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누구든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를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바보라고 믿으며 살 것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


어쩌면 나는 물고기였는지도 모른다.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믿어버린 물고기. 그 기준 안에서는 나는 늘 실패자였고, 늘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늘을 벗어나 나와 함께 살아보니 조금 다른 풍경이 보였다.


나는 사람의 말속에 숨어 있는 온도를 읽는다. 누군가의 표정 뒤에 감춰진 마음을 오래 붙들고 생각한다. 작은 문장 하나에도 며칠씩 머무를 수 있다. 나는 빠르게 빛나지는 않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사람이다. 쉽게 증명되지 않는 대신, 오래 남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제는 안다. 내가 바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다른 기준으로 자라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세상의 잣대에서는 여전히 서툴러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만의 호흡으로 삶을 건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말은 여전히 가끔 나를 흔들지만, 이제는 그 말 위에 조용히 덧붙일 수 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내 능력이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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