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抛棄)
포기 : 던질 포(抛), 버릴 기(棄)
포기(抛棄)라는 한자어는 던질 포(抛), 버릴 기(棄)를 쓴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멀리 던져버리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이 단어를 떠올린다. 너무 힘들어서, 더는 버틸 힘이 없어서, 그냥 던져버리고 싶을 때 말이다. 어제의 나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었다.
사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우울이 온 몸을 감싸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듯 기운이 없었다. 사무실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겨우 참아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한때는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무실 전화와 휴대전화가 번갈아 울렸고 문의를 받다 보면 입안이 바짝 말라 침이 말라붙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때는 하루가 끝나면 기진맥진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꽉 차 있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고, 하루를 꽉 차게 살아냈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가올 청구요금은 그대로인데 매출은 줄어들고, 모아두었던 돈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바라보는 일이 견디기 힘들다. 숫자는 조용히 줄어들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요란하게 무너진다. 나는 결국 남편에게 말했다. 괴로워서 이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그 말은 생각보다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남편은 짐작했던 사람처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포기하지 말라고. 당신은 한 번 크게 일으켜 본 사람이니까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인생에서 그런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크게 돈을 벌었던 사업이 있었는데 경쟁자가 들어오고 일이 조금 힘들어지자 자꾸만 핑계를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영업이 힘들다, 시장이 안 좋다, 몸이 아프다, 내 시간이 없다, 다른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다가 결국 접어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그렇게 후회가 되더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틸걸. 그 안에서 방법을 찾을 생각을 할걸.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하고 말이다.
남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라고. 처음에 전화 한 통 와도 기뻤던 그때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겨우 한 통이 아니라 드디어 한 통이었던 때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덩어리의 정체가 조금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권태, 또 어느 면에서는 오만이었다. 나는 지금, 처음의 그때처럼 열심히 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전화 한 통에도 기뻐했다. 그 한 통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많은 전화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문의가 조금 줄어들면 불안해졌고, 예전의 성과를 기준 삼아 지금을 실패처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서 감사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뎌진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권태는 익숙함에서 오고, 오만은 익숙함이 만든 착각에서 온다. 잘될 때 우리는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그것이 실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인 것처럼. 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우연과 기회, 그리고 운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제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는, 일단 이 안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숨이 쉬어졌다. 아직 몸은 무겁다. 마음을 짓누르던 무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안다. 나는 아직 던져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주말에는 푹 쉬어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가 시작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하루를 바라보는 대신, 다시 울리게 할 방법을 찾는 하루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오늘 하루만큼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