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그릇에 사람을 채우지 않기로 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by 이손끝

사람 하나 잘 뽑는 게 세상만사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나도 그 말을 수긍한 경험이 있다.


3년 전이었다. 출산일을 앞두고 배가 불러올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사장이었기에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르는 동안,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 곁을 지키는 동안 내 빈자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 간절했다.


내가 원한 건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다. 나보다 나이가 좀 있더라도 엄마처럼 사무실 살림을 살뜰히 챙기고, 친절히 상담하고, 경리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성실하고 든든한 조력자였다.


이력서를 보고 가장 적합하다 싶어서 면접 날짜를 잡았다. 접견실에서 만난 그녀는 당당했다. 이미 공고에 연봉을 명확히 써두었는데도 "나는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며 갑자기 높은 금액을 요구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절박했던 나는 '그만큼 일을 잘하겠다는 자신감이겠지'라며, 섣부른 결정을 했다. 대신, 업무 능력을 봐야 알 수 있으니 수습 기간 3개월을 거쳐 최종 결정하자고 합의하고 그녀를 채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생의 시작이었다.


출근 첫날부터 그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업무 지시가 궁금하거나 의견이 다르면 편히 얘기하면 됐는데 책상에 앉아 업무를 익히기는커녕,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입만 열면 업무 질문 대신 요구사항이 쏟아졌다. "모니터 받침대 사달라", "개인 물품 보관용 락커가 필요하다", "나는 믹스 커피는 못 마시니 커피 머신을 놓거나 드립백을 사달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일반 휴지는 못 쓰니 미용 티슈를 비치하고 휴지통도 바꿔달라"며 업무와 상관없는 것들에만 집착했다. 그녀가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은 호텔 데스크, 병원 원무실 등 깔끔한 환경이었다. 이해가 되긴 했다. 하지만 여긴 작은 사무실이란 것을 생각해줘야 했는데 그게 아쉬웠다.


복지 관련해서 요구를 하더라도 먼저는 업무에 대해 물었어야 했다. 그녀는 정작 중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몇 마디 묻지 않았다. 간간히 그녀의 개인 전화가 걸려왔고, 통화에서의 말투는 차가워 업무가 익숙해지면 다른 직원과 고객을 어떻게 대할지 가늠이 되었다.


점심 도시락 업체에서 오는 반찬도 입에 안 맞는다며 거의 손도 대지 않고 본인이 싸 온 과일만 먹는 그녀를 보며, 나는 사장이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다. 나보다 연배가 많으니 뭐라 말하기조차 애매해 속만 타들어 갔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가시방석이었다.


결국 채용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정중히 종료를 고했다. 일주일 치 급여를 정산해 주려는데 그녀가 툭 내뱉은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수습 기간이 끝나고 연봉을 협상하기로 한 내 말을 제멋대로 해석해, 처음부터 본인이 요구한 고액 연봉으로 시작하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임원급 월급을 받으면서 업무 시간에 멍하니 앉아 요구사항만 늘어놓던 그 무책임함에 기가 찼다.


좋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요구하는 금액보다 돈을 더 얹어주며 사과했다. "다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대하기가 너무 불편해서 함께하기 어렵다"라고. 그녀는 이유야 상관없는 듯했고, 생각보다 많이 입금된 금액을 확인하더니 웃으며 인사하고 떠났다. 그 웃음을 보며 '아, 내내 불편했던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온몸의 힘이 풀렸다.


정말 인사가 만사라더니, 사람 잘못 들이니 일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 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기로 했다. 아이 낳기 전날까지 일했고, 병실에서도 노트북으로 일했고, 조리원 대신 집으로 돌아와 신생아를 옆에 두고도 일했다. 아기 잘 때 자고, 잘 먹어야 했지만 일을 해야 해서 그러지 못했다. 몸은 부서질 듯 힘들었지만, 사람에게 속을 썩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선택이었다.


한때는 직원을 여럿 두고 회사를 크게 키워보려는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직원의 성장에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고 스트레스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졌다. 나는 직원으로 오래 일해왔고, 사장이란 자리가 서툴렀다. 업무 지시를 하는 데 눈치를 봤다. 인사 운영 능력이 없단 결론이 났다.


내 그릇의 크기를 인정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지혜다. 작은 그릇에 억지로 무언가를 가득 담으려 해 봤자 결국 다 흘러넘칠 뿐이다.


이제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내 몫만큼 성실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이 일을 해나가겠다는 마음. 이 평온함이 언제 다시 욕심으로 변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좋은 사람을 들이는 '인사'도 중요하지만, 내 그릇에 맞는 만큼만 담아내는 '비움'이 나에게는 더 큰 만사(萬事)라고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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