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stress
주말 저녁,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보물처럼 여기는 나에게,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이 들어찬 거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압박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치르는 아버지의 생신상. 요리에 서툰 내 손끝은 갈 길을 잃었고, 마음은 이미 수천 번도 더 도망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날 선 말을 주고받으며 상처를 입혔다.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왜 자책과 우울로 끝이 났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웃으며 이 소란함을 즐기지 못할까.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 타박하며 깊은 우울의 늪에 빠졌다.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은 라틴어 '스트릭투스(Strictus)'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는 '팽팽하게 죄다' 혹은 '좁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니 주말 내내 나는 내 마음의 활시위를 끊어질 듯 팽팽하게 죄고 있었다. '완벽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이 상황이 힘들다'는 저항이 양끝에서 줄을 꽉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폭을 너무 좁게 만들어두고 그 안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법륜스님은 말씀하신다. 스트레스를 받는 진짜 이유는 '시간이 남아 여유로워 생각이 끼어들었기 때문'이거나 '하기 싫은 마음' 때문이라고. 스님의 말씀은 차갑지만 명쾌하다.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져 당장 음식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겨를도 없이 무엇이라도 차려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과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에너지를 낭비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대학교 과제와 본업 업무, 미래를 위해 달성해야 할 목표들 앞에서 나는 늘 나를 팽팽하게 조였다. 열 개 중에 겨우 한두 개를 해냈을 때, "이만큼이라도 한 게 어디야"라고 줄을 늦춰주기보다는 "남은 여덟 개는 어쩔 거니?"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업가로, 학생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도, 정작 내 안의 나는 늘 부족함에 허덕이며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이제는 그 팽팽한 마음의 줄을 조금 늦춰주려 한다.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아, 내가 지금 나를 너무 세게 쥐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작하고 싶다. 요리를 조금 못해도, 가족 모임이 조금 버거워도 괜찮다. 활시위를 잠시 늦춘다고 해서 내 인생이라는 활이 꺾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줄을 적당히 늦추어야 화살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법이다.
스스로 내 이름 앞에 붙여둔 수많은 '완벽해야 할 역할'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나는 결코 못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예쁜 사람일 뿐이다. 오늘은 자책 대신, 팽팽했던 마음의 매듭을 툭 풀고 편안하게 숨을 내쉬어 본다. 좁았던 마음의 방에 여유라는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여준다.
참 애썼다. 조금 헐렁하게 살아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