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내 모습이 보일 때.

재능(才能)

by 이손끝
11살 딸의 노트


아이의 노트를 넘기다 멈춘 곳에는 낯선 서커스단이 살고 있었다. 붉은여우 '스천', 쥐 단장 '퀠', 그리고 흰 담비 '와타'. 아이가 꾹꾹 눌러쓴 문장들 사이로 '불가항력'이니 '미련'이니 하는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애니메이터가 꿈인 열 살 남짓한 아이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단어는 재능(才能)이었다. 재주 재(才)에 능할 능(能).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이라지만, 한자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 의미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才'는 갓 돋아난 새싹의 모양을 본떴고, '能'은 곰이 가진 강한 힘을 형상화한 글자다. 즉, 재능이란 내 안에서 돋아난 아주 연약한 싹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인한 힘의 결합인 셈이다.


아이가 그려낸 서커스 단원들의 서사를 보며, 나는 그 싹과 힘을 동시에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오래전 내 방구석에서 혼자 대본을 끄적이던 한 소녀를 보았다. 어린 나였다. 소녀는 시력이 나빠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깡마른 몸으로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연습장에 빼곡히 대본을 쓰고, 1인 다역을 하며 보이지 않는 관객 앞에서 혼잣말로 연기를 펼치는 소녀. 그때의 나는 나만의 무대 위에서 단장이자 배우였고, 세상 모든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안에도 분명 갓 돋아난 초록빛 싹()이 있었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려던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현실이라는 무게에 눌려 그 연약한 싹을 돌보지 못했다. '먹고사는 일'과 '어른의 역할'이라는 이름 아래, 내 안의 배우는 대사를 잊었고 작가는 펜을 놓았다. 무뎌진 감각과 타협하는 사이, 내 세계의 막은 너무 일찍 내려가 버렸다.


노트를 덮으며 아이에 대한 대견함이 제일 컸지만, 곧이어 나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 안의 싹을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 아쉬움을 담은 눈으로 아이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못난 엄마의 마음이 엉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아이가 보여준 저 서커스 무대는, 어쩌면 멈춰버린 내 무대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비록 내 무대는 오래전 먼지가 쌓였을지언정, 이제는 아이의 무대에 가장 열렬한 관객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가진 그 연약한 싹()이 곰처럼 강인한 힘()을 만나 꺾이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내 삶으로 보여주려 한다.


딸의 재능은 나에게 거울이다.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의 꿈을 비추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건네는 가장 뜨거운 거울. 딸이 재능에 날개를 달고 행복하게 숨 쉴 수 있도록 곁에서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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