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流麗)
기계의 힘을 빌려 글을 쓰면서 어느덧 내 생각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문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흘러갔지만,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똑같은 말투,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빈틈없는 기획들.
그렇게 만들어진 글들은 어디서 본 듯한 모습으로 세상에 뿌려졌고, 나는 어느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글 쓰는 재미가 사라지니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고, 결국 방향을 잃은 채 글쓰기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유려(流麗)하다'는 말은 물 흐르듯 곱고 아름답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 글이 완벽하게 유려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내 글은 죽어갔다. 진짜 물줄기는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기도 하고, 웅덩이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기도 하는 법인데, 내 글은 그저 곧게 뻗은 수로처럼 차갑기만 했다. 굽이치고 멈추는 그 사람만의 '호흡'이 없으니 읽는 이의 마음이 머물 곳도 없었던 것이다.
엄마, AI로 만든 영상은 징그러워 보기 싫어.
어느 날 유튜브에 AI로 만든 숏폼 영상을 보며 인상을 쓰는 딸을 봤다. "그렇지? 그럴듯한데 그냥 사람이 어설프게 찍는 게 더 나아."라고 대답하며 깨달았다. 비록 영상은 아니지만 내 글도 유려한 척하는 보기 싫은 글이란 걸.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시 직접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옆 사람에게 수다를 떨듯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술술 꺼내놓았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잃어버렸던 재미가 다시 찾아왔다.
로직이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이제는 괜찮다. 매끄러운 껍데기가 아니라 투박한 진심을 보고 찾아온 단 한 명의 손님이, 결국 끝까지 내 곁에 남을 진짜 내 사람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가볍게 글 한 편을 마쳤다. 문장은 예전보다 조금 못생겨졌을지 몰라도, 글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번지르르한 남의 옷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이제야 글이 숨을 쉰다. 매끄러운 유령들이 떠도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온기가 밴 거친 문장들로 세상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