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 無害
"저게 뭐가 재밌어서 계속 봐?"
나와 정반대의 성향인 신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다. 화면 속에는 특별한 사건도, 배꼽 빠지는 유머도 없이 그저 빗소리와 찌개 끓는 소리만 가득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인 <삼시세끼>다.
나는 <인간극장>, <한국인의 식탁>, <효리네 민박>, <콩콩팥팥>, 최근엔 다정한 청년들이 빛나는 <보검매직컬>이나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가 담긴 <방과 후 태리쌤> 같은 잔잔한 콘텐츠에 푹 빠진다.
신랑의 질문에 나는 그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그냥 좋은 사람들, 좋은 풍경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사실 그동안은 내가 왜 이런 '무색무취'의 예능에 열광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신문 기사 한 줄이 내 마음을 톡 건드렸다. 자극적인 '마라맛' 예능들 사이에서 이른바 '무해(無害)한 예능'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한 분석 기사였다. 기사에 나열된 프로그램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내가 즐겨 찾는 리스트였다.
'없을 무(無)'에 '해칠 해(害)'. 곰곰이 한자를 뜯어보니 그 의미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무해란 단순히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해치거나 방해하는 가시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누군가를 비하해서 웃음을 만들지 않고, 억지로 갈등을 조장해 긴장감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화면 속 사람들은 그저 서로를 존중하며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낼 뿐이다.
나의 일상은 사실 이 '무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납기에 쫓기고 날카로운 비즈니스 현장에서 고객을 상대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을 분석하며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또, 나는 웹소설을 공부하며 치열한 '장르의 법칙'과 싸운다. 웹소설의 세계는 명확하다. 의견은 또렷해야 하고 전개는 번개처럼 빨라야 한다. 독자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을 강력하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 세계의 독자들은 지루하고 뻔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짧고 강렬하게 욕망을 채워줄 '사이다'를 찾는다.
하지만 웹소설 공부가 끝나고 수필 동아리에 발을 들이면 공기는 180도 바뀐다. 수필은 마치 갓 쪄낸 떡처럼 말랑말랑하고 담백하다. 화려한 수식어나 반전은 없어도, 평범한 일상의 갈피에서 찾아낸 진심이 흐른다. 수필을 쓰고 읽는 시간은 마치 무해한 예능을 볼 때처럼 내 영혼을 정화해 준다.
누군가는 삶이 너무 지루해서 자극적인 것을 찾고, 누군가는 삶이 너무 고단해서 힐링을 찾는다. 그렇다면 내가 힐링 예능을 찾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하고, 비즈니스와 창작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매일. 그 치열함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해치지 않는 '무해한 도피처'를 갈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를 웃게 하는 콘텐츠는건 그저 예의 바른 청년들의 다정한 대화, 서툰 솜씨로 수확한 농작물을 나누는 마음,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 같은 것들이다. 세상의 독한 말들에 지쳐 있을 때, 이런 '무색무취'의 풍경들은 내 마음의 소화를 돕는 시원한 숭늉이 되어준다.
오늘도 신랑은 입이 떡 벌어지는 갈등이 반복되는 예능이나 왁자지껄한 토크쇼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지루함을 달래고 쉬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리모컨을 가져와 조용히 채널을 돌린다.
지루함과 고단함 사이, 내가 보기로 결정한 것은 내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가장 소박하고 무해한 식탁이다. 비록 자극적인 마라맛은 없어도, 한 입 베어 물면 마음 가득 온기가 퍼지는 그 말랑말랑한 위로의 세계가 지금 내게는 가장 필요한 성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