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페어에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구매해주셨다는 점이다. 부지런히 출간일 전부터 입고 메일을 보냈던 덕분인지, 북페어 현장이 아니라 다른 서점에서 이미 내 신간을 구매한 후, 내게 그 책을 가지고 와서 사인을 요청하신 분들이 많았다. 물론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는 어느 손이든 그 옆에 껴 있었다. 첫 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판매율이 저조했어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직접 판매한 것이 아니라도, 이미 관심을 가지고 구매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올해의 숙제를 다 끝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싱그러운 슬픔 안에서』를 가장 많이 찾아주신 분들이 내가 모르는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한 설명을 듣고도, 제목에 '슬픔'이라는 단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책을 품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다는 것과, 그것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지만, 그만큼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들도 많이 마주하는 일 년이었다.
언제 온다고 미리 말해주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그 사람들을 기다린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기다릴 때는 지나가는 얼굴들을 찬찬히 보며 저 사람일까, 계속 궁금해한다. 대부분의 독자님들은 아무 말없이 와서 거침없이 계산을 하고 사인을 하려고 이름을 물으면, 내가 기다리던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 짧은 순간에는 내 얼굴과 그 얼굴 사이에서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이 스르륵 스쳐 지나간다. 고마워요. 고마웠어요. 하염없이 말한다. 손을 잡는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었다고 말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전자책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내용이 담긴 종이책을 구매해주신 분들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미 나왔던 다른 책들뿐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나온 책까지 모두 품어주는 분들이 많았다.
마우스 북페어가 끝난 후, 내가 꽁꽁 숨겨두었던 두 번째 책에 대한 주문이 담긴 메일들이 내 메일함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내가 계속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나는 슬픈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여름으로 지어진 곳』 주문이 쏟아지는 걸 보고, 계속 써도 된다는 대답을 얻은 것 같았다. 당장 주목받지 못해도, 내가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결국 뒤돌아보며 내 글들을 발견해준다.
아진이를 만나고 싶지만, 또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올해 단 하루도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지난 겨울, 혼자 이재모 피자에 앉아서 아진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네가 미웠는지, 차곡차곡 쌓은 쿰쿰한 마음들을 나를 배웅해주는 사람에게 와다다 쏟아냈다. 일부러 그 섭섭함과 서운함을 날카롭게 돌돌 굴려서 그 애 마음에 무작정 던져버렸다.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
이번에는 친한 작가님과 마지막 일정으로 이재모 피자에 또 왔다. 다른 사람과 앉아서 그때와 똑같은 피자를 먹으면서 지난 겨울을 떠올렸다.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우리 사이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함없을 거란 두터운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겁이 났다. 혹시 내가 그 믿음에 생채기를 낼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우리는 주로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는데, 특히 이번에는 내가 일이 있어서 출장으로 온 거였고, 예전보다 체력이 많이 안 좋았다. 괜히 만나서 내가 이 잔잔한 우정에 돌을 던지게 될까 봐 겁이 나서, 작은 이유들까지 대며 아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다른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부산에서 안정적이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놀래켜주고 싶어서 아진이가 몰래 왔다. 매일 하루종일 연락하지만 얼굴을 보는 건 그 때 이후로 처음이라서 엄청 울컥했다. 티비는 '사랑은 싣고'를 찍었던 연예인들이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았다. 『여름으로 지어진 곳』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에게 20년 된 친구와 네 번째 절교를 하고 나서, ‘영원한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썼던 책이라는 설명해주면서 그 친구가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얘라고 말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아진이가 내게 남겨 준 고마운 말들을 봤다. 울고 있다고 사진을 보내려고 했는데, 내 사진이 전송될 동안 아진이도 울고 있는 자기 얼굴을 찍어서 내게 보내줬다. 수빈 작가님의 문장과 아진이의 문장을 보고 다음 책 제목을 정했다. 빨리 이 책을 채우고 싶다. 다가오는 내년이 기다려진다.
기차를 타기 전 함께 밥을 먹었던 친구가, 나는 그저 재밌고 웃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상처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말해줬다. 나는 웃긴 사람이라는 칭찬을 제일 좋아한다. 나는 정말 웃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종종 현실 친구들과 책으로 먼저 나를 알게 된 사람들 사이의 괴리감을 눈으로 볼 때가 있다. 재밌다. 나는 따뜻한 드라이 아이스 같은 사람인가 보다.
책을 내고 나서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산에 가기 전 날, 『싱그러운 슬픔 안에서』를 다시 읽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웃긴 또 다른 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균형 잡힌 반반 사람. 둘 다 잃고 싶지 않다. 다음 북페어 전에는 내가 얼마나 재밌고 웃기고 밝은 사람인지, 그런 에피소드만 모아서 작은 책으로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