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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Oct 11. 2024

소년원에서 온 편지

요즘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에게 편지를 쓰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한 네 달쯤 지나면서부터는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저기 있는 아이들은 심각한 죄를 저질렀을 거고, 그게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일일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같은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득 피해자들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분명 여전히 고통받고 있을 텐데, 가해자인 아이들은 이렇게 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도움도 받고, 누릴 것도 많아 보인다. 그게 나에게는 점점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 편지를 계속 써야 하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혼란스럽다.


특히 내가 주고받는 그 아이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 죄를 짓고도 이렇게 나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무언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건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 친구와는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엔 자기 얘기와 하소연만 늘어놓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먼저 나와 내 강아지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내가 말했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응원해준다. 그리고 내가 항상 편지의 끝에 계절의 모습과 함께 이름을 쓰곤 했는데, 이 아이가 세 번째 편지부터 나를 따라 쓰기 시작했다. '겨울의 시작에서, 봄의 한가운데, 여름의 끝에서'라고 썼던 나를 따라서, '여름에, oo가'라고 적은 것이다. 변화하는 계절처럼, 우리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이 모습을 보며 좋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내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돕는 일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일과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감정이 복잡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회의감보다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가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이 청소년들 역시 아직 성장하고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소년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돌아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주고받는 편지 역시 그들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나누는 이 대화가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를 돕고 있다는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이 계속된다면,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을 함께 병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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