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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15. 2024

할머니, 안녕!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모든 걸 구구절절 다 쓰진 못하지만, 묘하게 후련하다. 고모에게 전화를 받고 하나도 슬프지 않고 오히려 후련하다고 말했더니, 고모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 아빠가 내 동생 명의로 진 1억 3천만 원. 내 동생은 그 돈을 갚느라 20대를 다 보내버렸다. 스팸 메시지함에 들어온 아빠가 보낸 부고 문자 속 링크도 혹시 금융 정보를 빼가는 스팸일까 봐 두려워 클릭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죽음보다 이런 상황이 더 슬펐다. 다음 달에 세 번째 책이 나온다. 


교정 선생님께 원고를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어봤는데 할머니에 대한 글이 너무 많아서 잠시 고민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좋았던 기억은 할머니뿐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남은 미련이 없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뒤돌아보지 않고 새롭게 살고 싶다. 할머니에 대한 연민때문에 겨우 이어가던 친부에 대한 마음은 쌀 한 톨 만큼도 남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 아버지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아빠 한 사람뿐이다. 가끔 일기장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외침이 있다. 이런 마음을 남들 눈치보지 않고 토해낼 수 있는 이곳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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