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운 Aug 29. 2024

글자 하나가 뭐라고

     책을 쓰다 보면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를 책에 넣을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하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날은 책을 쓰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냥 써버리자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이런 건 브런치에나 올리면 되지, 굳이 책에 넣어 많은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겠다고 중얼거린다. 그게 바로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오래전부터 형편없는 아빠를 둔 자녀들이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 산 건 아빠인데, 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건 나머지 가족들인가, 그 현실이 화가 났다.


     나는 아빠가 둘이다. 주로 원망하는 내용은 친부에 관한 것이고, 내게 조언을 해주거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글은 다른 아빠에 대한 것이다. 새아빠라고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미 내가 친부와 함께 산 세월보다 더 오래, 내 인생의 절반보다 긴 시간을 함께 살았다. 한 번은 부산에 다녀오면서 있었던 친부와의 일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었다. 어떤 모임에 참여했을 때 누군가가 무엇을 하다가 왔냐고 묻길래, 아빠와 김치전을 만들어 먹고 왔다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물었다.


     "아, 인스타그램에 쓴 그 아버지요?"


     순간 속으로는 '이 새끼가?'라고 욕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아니요, 다른 아빠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아빠 얘기를 남이 볼 수 있는 곳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최근에 내가 올린 글을 언급했을 수도 있다. 모든 게 다 내 자격지심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 집 이야기를 다 털어놨다. 그들은 처음에는 나의 아빠를 동경했다. 남의 자식을 품는 게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린 아버지가 참 대단하시다고, 엄마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 보인다고, 나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너를 사랑해주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래놓고는 헤어질 때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이야기를 내 가슴에 꽂는 비수로 사용했다. 그 상처가 곪고 곪아 터졌던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아빠와 엄마 앞에서 울며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언제까지 아빠랑 우리랑 성이 달라서 동네 사람들이 볼까 봐 택배도 가짜 이름으로 받아야 해? 남자들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하면서 약점 있는 사람처럼 작아져야 하고, 그 애들의 이해를 구하느라 벌벌 떨어야 해? 우리 가족이잖아. 진짜 가족이잖아. 나 너무 지쳤어. 이제 아무 설명 하지 않고 살고 싶어. 우리 성 바꾸자."


     다음 날, 나는 동생과 아빠와 함께 성인 입양 신청을 하기 위해 행복복지센터로 갔다. 성인 입양은 개명보다 쉬웠다. 그렇게 우리 셋은 같이 산 지 20년 만에 같은 성을 가지게 됐다. 성인 입양이 허가된 후, 우리는 성본 변경 신청을 했다. 판결문이 나온 주말에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집성촌으로 갔다. 아빠의 조상님들이 잠들어 계신 곳에서 절을 올렸다. 새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때는 행복복지센터 앞 의자에 앉아 강아지를 끌어안고 울었다. 이렇게 쉬운 거였는데.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조금 덜 상처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의 흉터들이 공기에 섞여 흩어지고 있었다.


     성을 바꾼 후, 우리 가족의 일상은 생각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이름이 바뀌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택배 기사님 앞에서도 이제는 당당하게 진짜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아빠 이야기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만의 것이고, 그 누구도 우리의 삶을 평가할 수 없으니까.


     이제 나는 책을 쓰는 것도, 글을 올리는 것도 더는 망설이지 않으려 한다. 남들에게 익숙한 모양의 가족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 가족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아빠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나는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전 21화 내 꿈은 당신 장례식에 상주가 없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