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정도 여유있게 비어서 딱 필요한 것만 있는 냉장고상태를 좋아한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뭔가 꽉꽉 차있을 땐 절로 눈쌀이 찌뿌려진다. 시간을 들여 오래된 음식, 며칠 더 있어도 안 먹을 것 같은 음식을 모두 버리고, 냉장고안까지 쓱쓱 닦고, 선반바닥에 알루미늄 호일을 깔고나면, 기분까지 상쾌하다.
문득, 인생이란 냉장고와 비슷한 게 아닐까싶다.
오래 쓸 수 있어 한정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기한이 정해져있다.
관리를 잘 하면 통상 기한이 늘어난다.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 항상 담고 있는 것들도 있고, 이벤트성으로 담는 것들도 있다.
이것저것 마구 쑤셔넣고 관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보관해야할 것까지 망치게 된다.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연식이 오래 될수록 그러하다.
같은 것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있다.
주인의 성격을 드러낸다. (나처럼 미니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꽉꽉찬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주인의 현재 마음상태를 드러낸다. (지나치게 바쁘거나,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어김없이 지저분해진다)
냉장고 안엔 통상 먹는 걸 보관하고, 내가 먹는 것은 나를 구성한다. 그리고 보면, 냉장고가 품고 있는 것은 곧 나다. 내 가족이다. 냉장고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는 내가 나와 내 가족을 어떻게 살피고 있는가와 다를 바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냉장고가 새삼 엄청 크게 느껴진다.
냉장고 이 녀석. 매우 존엄한 녀석이었구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냉장고.
더욱더 경건한 마음으로 내 인생과 함께 잘 돌봐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