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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Jan 10. 2022

진딧물 퇴치를 위한 다짐

들여다보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카랑코에가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봄부터 늦여름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워 나를 웃게 만들어준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이 가을이 되면서 꽃을 피우지 않았다.

요르단의 가을은 11월 중순까지 낮 기온이 종종 21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씨라 카랑코에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인데, 내게 꽃봉오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한동안 초록빛의 부채처럼 탐스러고 도톰한 잎들이 관엽식물 같았다.


언제쯤 다시 꽃을 피울까? 생장 환경이 맞지 않은가? 물을 너무 자주 주었나?

마음이 토라져 내게 얼굴을 비추지 않는 연인 마냥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녀석들이었다.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보니 낮이 긴 시절에는 꽃을 피우지 않을 때가 있다고 그래서 밤에는 최대한 빛을 차단해주어야 한다고 해서 며칠 동안 밤마다 종이 박스를 씌워주기도 했다.

밤이 긴 겨울이 되자 스스로 꽃을 움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나 보다.

다시 꽃봉오리를 움튼 카랑코에가 기특하고 반가워서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들여다보다, 불청객을 발견하였다.

노란 쌀겨 같은 가루들이 잎에 가득하고, 꽃 주변으로는 까만 깨처럼 생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잎은 무언가 끈적한 것들을 쏟은 것 마냥 반질반질한 상태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만드는 현상이었다.


언제나 행동이 빠른 내 반쪽은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그 현상의 정체를 내게 알려주었다.

"진딧물"

맙소사, 진딧물이라니..... 말로만 듣던 진딧물이 애지중지 키우던 카랑코에를 뒤덮어 버렸다.

얼마나 기다리던 개화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쌀겨는 진딧물의 허물이고, 끈적한 현상은 진딧물의 진액이란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매우 당황스럽다.

서둘러 인터넷을 찾아본다. 문제가 닥쳤을 때, 우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법들을 공유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우선, 마요네즈와 치약을 물에 희석해서 뿌리는 방법도 있고, 주방세제를 물에 풀어 분무기로 직접 분사하는 방법도 있고....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늦은 밤 열심히 검색한 방법들을 정리하고 다음날 실행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진딧물이라.... 나의 식물 친구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존재를 무찌르리라.


밤새 머릿속에 진딧물로 뒤덮인 카랑코에들의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진딧물을 퇴치하려다 카랑코에 마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경험이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텐데 경험이 없으니 시도하는 것에 불안함이 따른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비겁한 일이니 해보자. 무엇이든 해보자.


진딧물이라는 존재가 내 머릿속에서 아주 거대한 빌런이 되어버렸다.

진. 딧. 물.....


내 식물 친구들이 진딧물의 무차별 공격 속에서 힘없이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의 전의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내가 구해 주리라.


내 주변에도 진딧물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진딧물이 식물의 진액을 빨아먹으면서 번식하듯, 그런 이들을 만나면 내 진이 빨리는 것 같다. 멍해지고, 숨이 막혀온다.  

진딧물과 같은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토해내지 않으면 다시 온전한 것을 채우지 못하기에 토해내야 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나를 진딧물에게서 구해주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찾아올 때, 퇴치 방법을 찾아주고 진딧물에 진액이 빨린 내게 퇴치 약도 뿌려주고, 햇볕도 쐬여주고, 바람도 쐬여주는 존재가 있으니 오늘도 살아낸다.

혼자서는 그 무엇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운명인 듯하다. 그것이 식물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식물은 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잎과 줄기를 살펴보고, 때가 되면 물을 주고 햇볕과 바람을 쐬어주어야 건강하게 자란다. 병충해가 생기면 퇴치 약도 뿌려줘야 하고, 시름시름 앓으면 원인을 찾아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진딧물의 진액처럼 전염병이 우리를 뒤덮어 버렸지만 누군가는 퇴치 방법을 찾고 다른 이들을 구해낸다. 또 누군가는 햇볕을 찾아 옮겨주고, 바람을 쐬어 준다. 혼자서는 수많은 병충해와 같은 존재와 상황을 다 이겨내기가 어렵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진딧물로 인한 생각의 꼬리물기는 결국, 나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닿았다.

이제껏 나는 혼자서도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이라 자신만만했다. 그렇게 믿어왔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사람들 안에서 살고 있었고, 나를 들여다봐주고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약을 먹여 살리는 일도 있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 나는 오롯이 혼자 살아낸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식물 친구들은 언제나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자만함을 깨닫고 겸손해지게 만든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림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해 준다.

결국 모든 생명은 서로의 돌봄이 필요다고 말한다.


나를 들여다봐준 이들의 노력으로 내가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주위를 돌아보자.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누군가는 우리가 무심한 사이에 진딧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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