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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Feb 09. 2022

침묵의 조언자

처음 시작은 공기가 맑아진다니 하나 들여보자라는 생각에서였다.

코로나로 인해 온 가족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집안 공기가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공기정화에 효과적인 식물을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관리가 수월해야 한다는 필수 전제 조건과 함께 말이다.


식물을 돌보는 것의 방법을 잘 모르던 참이어서, 우선 초보자도 잘 키울 수 있고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어야 했다.

가족과 함께 화원을 다니다, 잎이 탐스럽고 빛나는 화분이 눈에 띄었다.

'금전수'

이름도 참 복되구나... '금전수'

한 달에 한번 물을 주면 되고, 어디에서는 잘 자라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음....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국화꽃 화분 세 개와 함께 우리의 첫 식물 금전수를 식구로 맞이 하였다.

온 가족이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화분에 새 흙을 담고, 구입한 화분들을 정성스럽게 옮겨 심었다.


금전수를 집안에 들이는 순간, 금전수가 있을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식물과의 첫 동거여서 그런지, 금전수가 있는 곳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화분 받침대도 없었거니와 가구들의 배치와도 맞지 않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다 시간이 흘렀다.

'그래 공기 정화를 위한 화분이었으니, 방으로 옮기자. 방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쉴 수 있을 테니...'


초보 식집사의 바람대로, 금전수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금전수 덕분에 다른 식물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식물을 키울 수 있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겨났다.

하나 둘 새로운 식물들을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고무나무, 테이블 야자, 콤팩타, 스킨답서스....

이름도 생소했던 식물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품고 싶은 식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식물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식물에 필요한 도구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마당에는 언제든지 화분을 옮길 수 있는 화분과 흙이 쌓이기 시작했다.

방에 있던 화분들은 어느새 우리 집에서 가장 볕이 좋은 거실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선택한 식물 생활이 식물을 위한 생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프거나 뭔가 힘든 징후가 보이면, 원인을 찾고 부리나케 화분을 옮겨주거나 비료를 주었다.

식물들을 돌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의 성장과 회복의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문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식물들 역시 각자의 생존 방식대로 살아가고, 힘들면 힘들다 내가 알 수 있는 표현을 해주었다.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을 없는지,

밤새 아무 일 없이 눈을 떠 준 매일의 기적에 감사하는 마음과 같이 식물을 대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을 받을 수 있게 커튼을 모두 치고,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불어넣는다.

잎의 상태를 보고, 뿌리를 만져보며 과습이 되지는 않는지, 순환은 잘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본다.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매 순간 다른 기적과 같은 시간임을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는 새로운 아침을 알게 되었고, 아이의 숨결을 확인하며 안심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고,

아이가 아플 땐 대신 아플 수 없는 미안함과 안쓰러운 시린 마음을 알게 되었다.

잎이 노랗게 변해가며 마지막 힘을 쓰는 식물의 애씀을 알게 되었고, 식물의 뿌리가 물컹해짐을 발견하는 순간 나의 무지함에 미안했다.

일액 현상을 보며 식물이 스스로를 지키는 능력에 숙연해지고, 새 잎과 새순이 돋아나는 환희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기 전,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들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의 첫 식물 가족인 금전수는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났다.

늘, 햇살에 반짝이는 가장 아름다운 잎을 지닌 금전수는 바라만 봐도 든든하고 고마운 나의 식물 친구이다.


식물을 바라보며 오늘도 건강함에 감사해하며, 새 잎을 보여주는 생명력에 경건해진다.

식물을 키우면서 내가 맞이 한 세상은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식물 친구들은 내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생명력을 이야기해준다.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침묵 속에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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