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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Apr 11. 2022

너는 너로, 나는 나로

괭이밥이 빛나는 순간에 함께함을 기뻐하며

마당에 있는 사이프러스 화분에 지난달부터 클로버를 닮은 잎들이 자리 잡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클로버와 닮았으나, 클로버가 아닌 듯하였다.

길가에 토끼풀을 뜯어 꽃반지를 만들고, 네 잎 클로버를 찾겠다며 들판을 휘젓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떠올라 클로버를 닮은 잎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여러 날이 지나고, 무심코 바라본 화분에 아주 작고 앙증맞은 노란 꽃이 피어있다.

색이 노랑이라고 하기엔 깊고, 노르스름하다고 하기엔 밝고 탐스러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불현듯, 너의 존재를 알고 싶었다.


식물 검색 어플로 찍어 이름과 존재를 알고자 하니,

'괭이밥'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소화가 안될 때 먹는 잎이라 하여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여러 해 살이 풀로 햇빛이 비추면 잎을 활짝 피우고, 그늘이 지면 잎을 모으고 여린 잎은 약용으로 쓰인다.

꽃말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괭이밥은 내게 잡초로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의 친절함, 빛나는 마음'


'이 작은 꽃이 괭이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구나!'

이름을 모르고 바라보았을 때는 내게 의미 없는 존재였다.

'괭이밥'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에 수많은 잡초들 중 어찌 네가, 어떻게 네가 내게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너를 잡초라 여기기엔 너무 맑고 탐스러워 그냥 너 자체로 인정하고 싶었다.


잡초라는 것이 인간이 분류한 기준으로 잡초가 된 것이니, 애초에 너는 잡초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겠지.

세상에 모든 생명들은 처음 존재할 땐 존재 그 자체로 다른 부연 설명과 분류가 필요하지 않은 본래의 본질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문득, 나는 인간이 분류한 어느 부류에 속하고 있는 가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분류가 언짢아졌다.

세상 만물에 다 이유가 있고, 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듯이 인간 또한 그러할 것이다.

왜 인간은 모든 것을 분류를 하고 종을 나누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 기준마저 인간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한 생각의 시작이 수많은 차별과 분노와 증오 그리고 한계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나는 그러한 기준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너도 그러한 기준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너는 괭이밥으로, 나는 나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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