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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Apr 24. 2022

소심한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

뽀송뽀송하게  말려진 수건을 개다 문득, 수건에 곱게 수놓아진 글씨를 보았다.

'신부 000 신랑 000 축 결혼. 2009년 0월 0일'

'00의 첫 생일 2010년 0월 0일'


누군가의 결혼식, 누군가의 첫 생일을 기념하는 글귀가 색이 바래진 수건 위에 기쁜 날을 오래 기억하려는

의지를 가득 담아 새겨져 있다.


'다들  살고 있겠지? 00 첫돌이 벌써 12 전이라니!'

새삼 시간의 속도에 흠칫 놀라게 된다.

지금은 이들이 어찌 지내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 얽혀 있던 인연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인연은 굳이 잘라내어 다시 만나지 않을 인연이 되고, 어떤 인연은 헐거워진 관계를 애써가며 다시 연결하고,

어떤 인연은 아주 단단하게 맺어져 끊어지지 않은 인연이 되어있다.

앞으로도 어떤 인연이 내게 닿고, 또 멀어져 갈까?


내가 아는 B언니는 신기하게 인연을 아주 잘 맺고, 잘 유지하는 사람이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가정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몇 년을 아주 가깝게 지내는가 하면

여행지에서도 한국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스스럼없이 다가가 인연의 거미줄을 아주 넓게 오래 펼쳐간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한국사람의 모습이 보이면 자리를 피하는 나와 매우 상반된 행동 방식이다.

사소한 것도 알고 싶어 하고, 소통하는 B언니와 달리

나는 사소한 것은 알리고 싶어 하지 않고, 굳이 나서지 않는다.


B언니와 나는 인연을 맺는 모습 또한 매우 상반되어 있는데, 그런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자극을 주는 인연이라는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나는 늘 B언니에게 새로운 자극과 정보를 습득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언니와의 대화는 내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B언니는 내게 뮤즈와 같은 존재이다.


가깝게는 B언니와 나의 모습만으로도 인연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에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과 사연이 얽혀 있을까?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외향적이라고 하고,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을 내향적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외향과 내향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다.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외향적 성향이 증폭되고 때로는 내향적 성향이 증폭되어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식이 모두 다르다.  

이런 내 자신 혼란스러웠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마저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편안해졌다.

어떤 환경과 어떤 인연에서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한 때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그런 상황들의 반복에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인간관계는 더욱 좁아졌다.

많은 인연의 기회를 놓쳤고 결국, 새로운 나를 발견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사람 관계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느껴지는 일이 허다했다.

"저는 지금 광야에서 훈련 중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었다.

광활한 모래사막에서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모래뿐이고 실망뿐인 시간들이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자의 오만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인연이 되었는가는 생각해보지 않고, 스스로의 연민만 가득했다.


'그 모래들 중 아주 작은 모래알 한두 알이 내 손가락 사이에 남아있다면?'  

주인공 시점을 관찰자 시점으로 옮겨보면 인간관계에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애쓰고 혼자 실망하는 것보다는  발짝 뒤로 물러서서,  역시  스쳐가는 인연이 되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안경을 썼던  사람? 혹은 목소리가 맴도는 사람, 아니면 아예 만난 적조차 기억나지 않은 인연이 되더라도 말이다.


'내게 닿아질 인연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닿을 인연을 상상해보자.'


수건에 새겨진 이름처럼 누군가에게 잠시 떠오르는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지나가거나 끝난 인연이어도 괜찮다.

시간의 얽힘 속에 머문 찰나여도 그것이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테니 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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