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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03. 2022

스파크와 스파클링이 만나는 자리

문장과 세계 #11


아주 오랜만에 퇴근 후 동료들과 한 잔 하기로 했다. 이게 몇 년만의 자리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인 만큼 퇴근 전부터 들뜬 마음이었다. 장소와 날짜 모두 핫플레이스를 잘 아는 동료가 자처해서 정했, 우리는 그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이번 역은 문래역입니다


문래창작촌에 들어서자 80년대로 걸어 들어가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옛 서울의 정취가 골목 구석구석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건물들 대부분 단층에 갈색 새시 달고 있다. 기와지붕 방수포를 덮어놓은 곳도 종종 보인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직물공장촌이었던 탓에 물레에서 유래한 ‘문래’가 동네 이름이 되었단다.



그 후로 금속 가공을 하는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철강으로 산업 부품을 만들어내 전문 지역이 었다. 2차 산업이 내리막을 걸으며 이제는 부산물 널브러진 빈 공간들이 더러 보인다. 한때 번성했을 이곳은 쇠퇴를 맞지만 여전히 유의 거친 활기를 물씬 뿜어내고 있다. 간간이 절삭기 소리가 왜앵왜앵 지잉지잉 활발하게 들려온다. 강한 것끼리 충돌하며 타다닥 불꽃 다.


아직 아있는 가게들은 대부분 베테랑 사장님이 홀로 운영하는 이라고 한다. 십 년을 같은 장소에서 한결같이 땀 흘리며,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광경을 지켜본 분들일 테다. 거친 환경에서 묵묵하게 제 할 일에 몰입하는 이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지나쳤다.



이곳에 창작촌이 들어서게 된 계기는 설치예술가들이 공장을 자주 찾다 보니, 그리고 마침 빈 공간도 많으니 작업실을 가까이 만든 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술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낡은 건물 그대로를 활용한 술집이 들어서고, 이색적인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색깔 있는 여러 술집들이 들어온 것 같다.



서울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면 익선동과 문래를 꼽을 수 있다. 두 곳 다 사람 한둘 동시에 지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에서부터 추억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익선동이 통유리와 밝은 색 목재를 활용한 현대식 한옥으로 세련되게 단장했다면 문래는 동네가 가진 전문성과 투박함을 그대로 살리면서힙한 분위기와 근사하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우리는 1차로 이름난 분식집에서 먼저 배를 채우기로 했다. 워낙 많은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곳이라는 대기 없이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입구자리한 주방을 지나 천장이 낮은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의 노포였다. 담백한 맛의 칼국수, 그리고 참기름과 김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비빔칼국수를 문해서 흡입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저녁노을이 길게 드리우며 건물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동료들은 저만치 앞서 걷고, 나는 사진을 찍다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잡기를 반복했다. 보조를 맞추지 못해 미안했지만 이 찬란한 금빛 햇살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르고 골목길을 돌아 돌아 한적한 와인바에 자리를 잡고 보틀 와인을 주문했다. 통일성 없이 재활용된듯한 의자들이 모여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다. 홀이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골목길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했다. 옆 공장에서 지런히 튀어 오르는 스파크 소리와 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거기에 입 안에 머금은 로제 스파클링 와인까지 제법 잘 어울렸다.



 잔씩 마시고 날이 저물면서 분위기 무르익는다. 한때 불통의 대명사였던 동료는 자학개그를 선보이며 우리를 웃겨주었고, 이날의 자리를 주선한 늘 생기 탱탱하게 밝은 동료는 뜻밖에도 우울감을 고백한다. 몇 년을 매일 보고 많은 대화를 했음에도 근래의 일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분위기와 장소가 떠미는 어떤 말들이 있다. 회사에서는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들으니 이제는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리를 마치며 아쉬워서 내일 아침에도 잠깐 모이기로 한다. 책 보는 시간이라 차 마시는 것도 즐겨하지 않던 나지만, 내일은 책을 잠시 덮어두고 티타을 즐 수 있을 것 같다.




Photo by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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