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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08. 2022

교양인이 되는 조건

문장과 세계 #12


나는 가족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공부를 잘하기 보다는 집중을 잘 했으면 좋겠고,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일하는 걸 덜 힘들어하면 좋겠다. 가 뭘 사주거나 유산을 물려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교양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평소에 유머와 인정이 넘치는 아빠가 한 번 화를 내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도, 할머니도 어쩌지 못하던 아빠가 자신조차 주체 못 할 정도가 되면, 어린 나는 아빠를 그저 끌어안았다. 애지중지하던 딸 앞에서는 약해지는 아빠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럴 땐 나도 아빠가 무섭고 싫었지만 그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란 동생들도 아빠 약간씩은  있었다. 손해 보는 것을 참지 못해 벌컥 화를 내고, 불편한 건 꼭 불편한 티를 내며 말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값을 치르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상황이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럴 때면 감정이 아니라 대화로 풀고 싶은 나는 홀로 외로웠다.



나는 커서 감정 제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예의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 갔다.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겨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참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한 것이다. 이런 성향이 가족들에게는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서운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의에 민감할수록 불편한 일은 더욱 많아졌다. 잘 아는 얼굴인데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 직원이 불편했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치거나 소리 내서 영상을 시청하는 이들이 불편했다. 의자를 들어 옮기지 않고 질질 끌며 쇠 긁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려는 사람들보다 먼저 타려는 이들이 불편하다.



이 많은 불들을 티 내거나 발설하지 않으며 교양이 지켜지는 상황을 갈망한다. 교양인이 가득한 세상을 상상한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교양은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다. 그저 타인에게 화나 짜증 없이 요구하는 바를 전달할 줄 알고, 모르는 사람에게 정치나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단정짓지 않고, 타인이 듣는 곳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비속어 차별언어를 쓰지 않고, 침을 뱉거나 담배연기를 내뿜지만 않아도 좋겠다.




타인에게 바라는 교양이 이런 것이라면 내가 갖추고 싶은 교양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양의 정의가 애매하므로 작가들의 개념을 빌려 와서 정리해 본다. 먼저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의 수업 2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보았고, 이 문장을 사랑게 된 이후부터 교양에 관해 말하는 구절들을 모았다.


교양인이 이루어지기까지
자연과 예술이 얼마나 끝없는 협업을 해야 하는지!


그는 항상 자신이 세운 어떤 규율들을 따르며 산다. 그것을 나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은 애정과 충만한 생각, 그것이 교양이다.  

- 로베르트 발저, 《벤야민타 하인학교》



'중산층 별곡'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중산층 기준은 이렇다.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직접 즐기는 스포츠와 악기가 있을 것. 나름의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분할 줄 알며, 약자를 도울 것.

 - 안광복,  《도서관 옆 철학카페》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세상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을 '교양인'이라 부른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서 세상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눈, 비판적 시각, 시대를 읽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 (…) 그런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화한다.

- 김민영, 《질문하는 독서의 힘》


 이런 글들을 읽고 아파트 몇 평, 연봉, 배기량 등 삶을 숫자로 말하는 이 사회의 버릇처럼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용서할 줄 알, 상처 주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고.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하고, 요리하고 공부하며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렇다, 내가 바라는 교양은 지식이나 외모적인 품위만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교양인은 자연을 아끼고 예술을 즐기며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발전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 삶에 몹시 중요했던 어떤 것이 사라진다 해도,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진심을 다하고, 흠뻑 즐길 수 있는 일들을  이상 마련해두어야 한다.


우리 집은 크지 않지만 고양이들과 사람 셋이 어울려 살기에 충분하다. 딸기는 공부보다는 드럼에 몰두하면서 책을 스스로 찾아 읽고, 달브는 테니스와 수영을 즐기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야구를 즐기고, 조만간 프리 다이빙 클래스에 등록할 계획을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했던 전국 수영장 탐방도 재개하고 싶다. 종 실패와 실수도 하지만,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내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는 교양인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 보려고 한.






이 글은 해울 작가님의 글을 읽고 썼습니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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