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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11. 2022

추억의 맛을 환기하는 마들렌처럼

문장과 세계 #13


아련하고 가물가물한 과거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데려다 놓는 타임머신으로는 음악과 향기도 있지만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에게 콩브레의 추억을 환기시켰던 마들렌, 프루스트가 영혼에 비유했던 그런 맛이 게도 있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 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 맛이었다. (...)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었다.




과거의 맛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집에서 구운 김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김은 사 먹는 게 아니었다. 들기름을 찹찹 바르고 소금을 비벼 뿌려가며 직화로 구워 불맛을 품은 김이야말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최고의 반찬이었다. 한 장 한 장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일이기도 하공장표 김이 흔해져서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살았다.



어느 날, 시장에서 맥반석 김구이를 발견하고 냉큼 사다가 저녁 식탁에 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밥에 김을 싸 먹던 달브의 눈이 갑자기 그렁그렁하더니,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맛이라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게 아닌가. 그 김은 확실히 옛맛을 떠올리게 했지만 눈물까지 흐르게 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엄마와의 추억이 있었나 보다.


그 엄마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는 것이 살짝 의아하긴 했다. 어쨌든 이 일화를 들으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 그대로 전달을 해 드렸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본가를 방문할 때마다 식탁에도 올려 주시고, 가져가라고 듬뿍 싸 주시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우리는 맛있는 김을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공장 김맛에는 반응하지 않는 입맛을 갖게 되었.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은  살 무렵에 즐겨 먹 우동이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삶아놓은 에 어묵 국물을 부어 후리가케를 뿌려던, 단순한 그 맛을 넘어서는 우동을 여태껏 찾지 못했다. 식집 벽에 세로로 ‘각동’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케우동’을 말하는 거였다. ‘가케 かけ’란 ‘국물을 붓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니 학교 앞에서 파는 이백 원짜리 우동 치고는 꽤 제대로 된 레시피였던 것이다.




더 기억을 거슬러 가면 나도 믿기 힘들지만 서너 살 무렵에 먹었던 이유식이다. 어쩌면 그보다 전일 수도 있을까? 그 맛이 기억나는 이유가 있다. 외국 아기 그림이 그려진 작은 유리병에 담긴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오란 크림 같은 것이 되직하면서 새큼하기도 하고, 입 안이 간지러워지는 맛이었다고 똑똑히 기억한다. 엄마가 그 병을 버리지 않고 오래 보관했기 때문에 그 맛은 내 혀에 각인되었다. (엄마한테 여쭤보니 그때쯤 밥을 안먹어서 사다 먹였다고 확인해 주셨다.)


@ blog.naver.com/gecko_log/221467384922


네슬레 쎄레락 이유식이라고 기억하는데,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네슬레는 맞지만 Gerber라는 브랜드를 달고 재출시된 이유식이 내가 기억하는 모양과 같다. 쎄레락은 지금은 철수되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다 크고도 남은 어른이지만, 언젠가 그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차였는데 이제 구할 수 없다니 아쉽게 되었다.


이것 말고도 고기 없는 시장표 고기만두랑 집에서 쪄먹던 달걀빵도 있었지. 내가 이렇게 추억의 맛 부자였던가. 나는 우리 딸기에게 어떤 맛을 새겨줄 수 있을까. 행히 삭한 호박전이나 순두부찌개, 맵칼한 콩나물국과 카레 덮밥 등 딸기와 달브의 취향을 사로잡는 몇 가지 레시피를 갖고 있다. 추억의 맛 가지는 것도 좋지만, 가족들이 먹고 싶어 때면 언제든지 뚝딱 만들어 내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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