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과 그이름은 왜그토록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일까? 알 수 없는 과거의 글쓰기에 대한 동경일까, 옛날 영화 속 멋진 장면에 자리하고 있던 그럴싸한 소품의 잔상일까? 또는특유의 둔탁한 소리와 묵직함이라는 물성 때문일까, 그도아니면 오직 글쓰기라는 하나의 행위만을 허락하는 올곧은 특성 때문일까. 어쩌면 ‘타자(他者)’라는 닿을 수 없는 대상과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자(打字) - 타자기나 키보드로 글자를 찍거나 입력함. (다음 사전) - 타자기나 문서 작성 도구의 글쇠를 눌러 글자를 찍음. (네이버 사전)
타자기 : 키보드의 조상 (나무위키)
먼저 타자기라는 이름을 살펴보자. 때리거나 친다는 의미의 ‘타’와 글자 ‘자’를 쓴다. 네이버 사전에는 ‘글쇠를 눌러서 글자를 찍’는다고 되어 있다. ‘글쇠’라는 글자마저 나를 사로잡는다. 소리 내어 '글/쇠', '타/자/기'라고 발음해본다. 글자를 눌러서 글을 만들고 문장을 직조하는 것이니 '언어의 베틀'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해본다.
@ namu.wiki/w/타자기
그 옛날에는 신식이었을 신문 광고에 으흐흥 웃음이 난다.손과 타자기를 발과 자동차에비유한광고 문구가 꽤나 설득력 있다. 20세기는 '스피-드' 시대여서 기계를 선점해야 잘 살 수 있는 시대였구나. 10개월 할부로 사려면 무려20%의 이자를 내야 했던, 만만치 않게 비싼 기계였구나.
어라, 그러고 보니 타자기를 잠시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오래되어 방치해둔 타자기가 있었다. 다들 호기심에 한 번씩 만져보고 말았지만, 나는 그 낡은 기계와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었다. 친해지려면 종이를 걸고 글을 써봐야 하는데, 전용 종이가 너무 귀했다.
그 타자기용 종이는 일반 종이가 아니었다. 기계가 끌고 들어갈 수 있도록 길게 이어진 종이여야만 하고 필요할 때 자를 수 있도록 절취선도 있어야 한다. 남아있는 전용 종이 뭉치는 겨우 반 뼘의 두께만큼 밖에 되지 않았고 다시 구할 수도 없었으므로, 종이 없는 타자기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엇을 쓸 것인가가 커다란 문제가 된다. 어젠다 같은 묵직한 개념을 찍어낼 수 있을 리 없고, 무턱대고 써서 종이를 낭비할 수도 없으니 먼저 노트에 초고부터 퇴고까지 모두 마친 다음에야 타자기를 활용할 수 있었다. 수정할 수 없으므로 오타가 나서도 안 되기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살펴가며 꼭꼭 눌러써야 한다. 이러한 진중한 글쓰기를 다루는 물건이니 어찌 가벼이 대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타자기로 친구들에게 줄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때는 다이어리와 편지 쓰기에 진심일 때였다. 다이어리는 온갖 색상펜과 그림들로 장식했으며, 하루에도 열 통쯤 주고받던 편지는 편지지를 대기벅차서 주로 잡지나 카탈로그 여백에 빼곡하게 쓰곤 했다. 그런 편지들 속에서 뽀얗고 귀한 종이에 검정 잉크로 타이핑된 편지는 유니크함과 세련미의 절정일 수밖에 없었다.
툭 불거져 나와 있는 글쇠를 누르면 낱글자 하나가 툭 하고 찍혀 나오는 것이, 마치 내가 쓴 것이 아니라 글자가 어디선가 ‘탁’ 하고 태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글자를 만들어가다 보면 따라 움직이는 부품이 있다. 이걸 ‘캐리지’라고 하는 모양인데 글자를 운반한다는 의미인가 보다. 아무튼 그것이 글자를 찍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다음 줄로 가서 다시 왼쪽에서부터 일을 시작하도록 원래 자리로 죽 밀어놓아야 한다.
글자를 치는 소리는 타닥 탁탁하는 경쾌한 소리인데 반해 캐리지를 끄는 소리는 일 하기 싫어하는 사람 등을 떠미는 것처럼 질척거리며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힘을 주어 밀다가 제자리에 도착할 즈음이면 뭔가가 딸각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의 무거운 회귀와 도착 지점에서의 안도를 느끼는 일도 재미의 하나였다.
요즘 서체에서는 자음이 초성인지 종성인지, 어떤 모음과 조합하는지, 그리고 받침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지만 타자기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초성도 종성도 똑같은 영역을 차지하고, 조합된 글자는 어딘가 엉성하고 문장으로 보면 들쑥날쑥하지만 낱글자 하나하나는 평등한 모양이 된다.
적고 보니 타자기라는 사물은 다른 사물이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들을 여럿 가지고 있다. 글쓰기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 주는 데다 거기에 아날로그라는 향수까지 더해져 특유의 감성을 품는다. 무지갯빛 불빛이 반짝이는 기계식 키보드는 절대 가지지 못할, 글쓰기라는 행위와도 닮은 투박함과 무게감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