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반홀름 공동체를 꿈꾸며 노래하며

우쿨렐레 적응기 #5

by 유달리


얼마 전부터 선생님의 선곡이 아닌 나의 선곡으로 수업 일지를 채워나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연주하고 싶은 곡 목록 1번은 〈스반홀름〉이었다. 우연히 듣고 사로잡혀서 어린이 딸기와 함께 수도 없이 들으며 노래했던 김목인의 앨범 〈한 다발의 시선〉에 담긴 곡이다.




ⓒ 김목인 〈한 다발의 시선〉
이런 서늘한 오전 창가에 서면
난 그곳의 이 빠진 컵들을 생각하지
알 수 없는 언어의 작업회의를 들으며
탁자 위의 사과들을 나눠먹었지

흙 묻은 장화를 하나씩 신고
숲의 너머에 있는 밭으로 가네
여기저기 풀섶에 흩어져 있는
달팽이를 밟을까 조심하면서


모든 곡이 좋지만 〈스반홀름〉은 멜로디가 특히 정겹고, 일상적이서도 서정적인 가사가 눈에 띄는 곡이다. 스반홀름은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의 작은 마을로,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 마을이라고 한다. 김목인 가수가 이곳을 방문했던 것인지 동경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을 그리워한 것만은 확실하다.




기타 악보도 찾기 힘든 이 노래를 선생님께 드렸더니, 노래를 들어본 뒤 코드를 뽑아내고 우쿨렐레로 연주할 수 있도록 변형해서 손글씨로 그려 주셨다. 모르는 가수의 모르는 노래를 듣고 들었을 선생님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익숙하지 않은 코드 이름에 살짝 겁도 났다. 긴장한 나를 혀놓고 선생님은 먼저 기타 연주로 곡을 들려준 뒤, 내 우쿨렐레로도 들려주셨다.



늘 그랬듯 우쿨렐레를 끌어안고 선생님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는데, 기타 소리에 내 악기의 줄이 함께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어떤 소리가 나에게 당도하고, 그 소리에 나의 악기가 반응하며 나에게 또 다른 진동을 전달한다는 것이. 악기도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연주가 나에게 닿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문득 들었다.


어렵지만 더듬더듬 잡아 보니 반주가 되고, 스반홀름 노래 가사도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곡을 모른다던 선생님도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음악은 그런 것이었다.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사람의 몸을 고유한 악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분과는 달리 연주는 난해했다. 단순하고 쉽고 느린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직접 연주해 보니 빠르고 어려운 노래였다. 분수 코드가 막 등장하고 어지러웠는데, 그런 건 다 빼버렸어도 여전히 쉽지 않다. 코드 하나가 도저히 내 손으로 잡히지 않는다. 자꾸 흐름이 끊기다 보니 선생님도 다른 코드로 변형할 수 있는지 연구를 시작하고, 나는 나대로 연습을 계속했다.


코드를 잡아내기 위해 계속되는 기타 연주가 듣기 좋아서, “선생님, 이 곡은 기타 연주로 듣는 게 좋은 것 같아요!”라고 슬쩍 건넸더니, “그럼 기타로 배워 볼래요?”라는 험한(?) 말로 돌아온다. 황급히 “우쿨렐레 네 줄도 못 잡는데 기타로는 더 안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니 “그게 달라요, 기타로는 할 수 있을 걸요.”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뭐지, 이 잘못 걸린 기분은. 할 수 없다, 그저 연습하는 수밖에. 난해한 코드를 힘주어 눌러 잡다 보니 왼손가락 손끝마다 베인 듯 통증이 밀려온다. 그때, 선생님이 “이거네요!”라며 쉬운 코드를 잡아냈다. 그 덕에 조금은 쉽게 연주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하시는 말씀.


그 코드가 아무래도 찌찌부리했는데
다행이네요.


찌찌부리? 듣는 순간 귀가 쫑긋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였는데도 어쩜 그렇게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지. 내가 좋아하는 곡을 손글씨로 삐뚤빼뚤하게 그린 악보를 선물 받고, 내 손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단어 수집가에게 새로운 단어까지 떨어진 기념할만한 연습날. 어렵지만 이번 한 주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을 떠올리면서 연주해 보는 거다.






Photo : pixabay.com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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