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팝과 미끄러지는 계단이 숨어 있던 곳

우쿨렐레 적응기 #4

by 유달리


음악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말하자면 어떤 때, 어떤 음악을 듣고, 그 때문에 자기 내부에 있는 무엇인가가 크게 확 변해 버리는, 그런 일 말입니다.




선생님이 Oasis를 언급하자 어떤 장소가 떠올랐다. 그 카페는 중심가 옆 골목길 지하에 있었다. 좁은 입구 문을 열면 믿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지하가 펼쳐졌다. 수능을 마친 뒤 여러 커피숍에서 알바를 했지만 그처럼 큰 곳은 처음이었다. 카운터 옆으로 길쭉한 서빙 바가 있었고 끝에는 널찍한 주방이 자리했다. 서빙 바 쪽 장식장은 다양한 모양의 커피잔들과 머그컵, 아이스크림 잔, 둥글널찍한 팥빙수 그릇과 길쭉한 파르페 잔지, 온갖 잔들이 향연을 펼치는 박물관과도 같았다.



열 페이지 남짓 가득한 메뉴 이름과 그 많은 잔들을 보니, 같은 시급을 받을 텐데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의 날카로운 인상이 동화책 속에 나오는 마녀를 닮았다. 보자마자 신경질에 잔소리를 쏟아내는 그가 자주 들르지 않아서 일은 할 만했다. 게다가 나를 포함해서 서빙 알바가 셋, 주방 알바 하나 그리고 시간대별로 바뀌는 DJ 오빠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심심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곳은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지하가 한 층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하 1층은 위에 설명한 대로 일하는 공간과 테두리를 빙 둘러 손님 테이블이 있었고 뻥 뚫린 가운데에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커다란 중앙 계단이 있었다. 단 끝 지하 2층에는 엄청난 LP가 꽂혀 있는 디제이 박스가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DJ가 음악을 들려주는 커피숍은 책이나 옛날 드라마에서나 보던 때였지만, 아무래도 그곳은 구조 때문에라도 그 방식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DJ 오빠들은 어린 우리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있는 자리와 물리적으로 멀기도 했다. 그저 신중하게 곡을 고르고, 꺼낸 엘피 판을 빙그르르 돌리면서 턴테이블에 올리는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최신가요가 반복되는 다른 커피숍과는 달리, 우리는 그들이 도하는 대로 Beatles의 명곡들과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Whatever자주 었다. 복층의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시원스러운 음색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끄러운 자유를 경험했다.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수준보다 높은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우리만의 유치한 놀이를 했다. 알바 경력이 두 달 이상은 되어야 할 수 있는 도전, 그것은 한 손에 쟁반을 들고 중앙 계단 난간을 타고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가서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빈 손으로 시작해서 빈 쟁반, 빈 물컵을 올린 쟁반, 물이 든 컵을 얹은 쟁반, 아이스크림을 올린 쟁반까지, 이런 식으로 게임하듯 단계를 높여갔다.


끝판왕은 완성된 파르페를 얹고 성공하는 거였지만 아무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주요 공략 대상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도전하다가 찌그러져 망쳐버리면 그건 손님에게 갈 수 없으니 우리 차지가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비싸면서 우리가 먹었다는 티가 나지 않는 최고의 메뉴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빠들이 우리를 어린애들 보듯 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장난에 몰입하던 중에도 어느새 스며든 음악들이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갔는지도 모른다.




무서운 사장님이 알았다면 격노할 일이지만 우리는 몰래 하는 장난이라 더 재미있었다. 그때는 사장님의 입장 같은 건 생각하지 못할 시절이라 철없이 놀았지만, 이제와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혹시 알면서도 눈감아준 것이었을까. 그랬다면 멋있는 분이 아닐 수 없다. 그게 아니라 해도 사장님 덕에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고, 허튼짓의 추억도 쌓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Oasis - Whatever


음악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이죠. 그런 일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눈금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의 세계가 한 단계 더 넓어졌다는 것을요.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책 정보 : 《해변의 카프카 하》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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