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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15. 2022

내가 영화감독이 된다면


글을 쓴 당사자의 마음에는 늘 어딘가 부족하기만 하고 썩 흡족한 글은 없으므로, 써 놓은 글을 어보고 고르고 고른 뒤, 발행 미루고 미루다가 용기를 낸다. 버튼을 누를 때 감정 안에는 대부분 긴장널찍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얼마간의 불안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기대도 함께다.


십 번 읽고 고쳤던 글이지만 발행 뒤에 읽어보면 여전히 새로워서 고칠 곳이 여러 군데다. 글 발행 전과 달리 발행 후에 수정을 하려면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해서 마음이 급해진다. 그렇게 완성도가 떨어지고, 오래 망설였던 글에 붙은 마음 모양 단추와 이름 하나하나가 더욱 감사하다.



어쭙잖은 글을 써서 세상에 내어놓자니 이런 일을 좀 더 용감하게 벌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한다. 글을 반듯하게 책에 담아 세상에 내놓는다면 그 무게가 어떨까. 수정할 수도 없는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견딜까. 나 하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힘과 노고가 담긴 책을 아무도 들춰보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을 어떻게 잠재울까. 책을 본 사람들의 반응 궁금해서 어찌할까.




영화라면 글과는 달리 관객의 반응을 모두 살필 수 있으니까,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하고 박한 상상을 시작한다. 내 영화는 아주 한적하고 작은 극장에서 하루에 딱 한 번 상영된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나는 내 영화의 첫 관객이자 유일할지도 모를 관객이 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평소보다 뽀독뽀독하게 세수 의식을 치르고, 어두운 색상의 옷을 골라 정갈하게 단장한 뒤, 들뜬 마음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집을 나선다.



극장에 가는 길에서부터 사람들이 있는지 살피지만, 작은 동네 좁은 골목길 이른 시간에 누가 있을 리 없다.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츠리기보다는 씩씩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팔을 부러 흔들며, 뒤꿈치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발바닥이 땅에 닿았다가 떨어지도록 바른걸음으로,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어서 두근대는 그 장소에 도착한다.




역시나, 극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관리인보다 내가 먼저 도착한 것이다. 상영 시간까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먼저 극장 앞에 걸린, 내가 만든 영화 포스터와  제목을 찬찬히 살핀다. 이게 내가 만든 것이 맞나? 의심도 해 본다. 어쩐지 남의 일 같다. 이 영화가 흥하든 망하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한다. 것과는 달리 다른 영화들은 모든 게 화려해 보인다. 인기가 많은지 상영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아니다, 못난 생각은 버리자고 고개를 저은 뒤 두 손을 부여잡고, 가끔 손바닥을 어긋나게 비비며 극장 주변을 한동안 어슬렁거리자니 드디어 관리인이 도착했다. 극장에 볼일 따위는 없는 척 물러난다. 철컥, 문이 활짝 열리고 극장은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눈치를 보던 나는 태연한 척 티켓을 끊고, 계획대로 내 영화의 첫 관객이 된다. 매표소 직원은 내가 손님인지 감독인지 일절 관심이 없다.



어두컴컴하고 텅 빈 극장에 앉아 외로움에 잠긴다. 철저한 고독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커튼을 들추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심장이 덜컥거린다. 사람이다, 사람이 왔다. 나는 그 두 번째 관객의 손을 잡고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아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그를 유심히 관찰한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여길 왔을까? 좋으면서도 그에게 실망을 안겨 줄까 봐 불안하다. 그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신기하게도 드문드문 둘씩 셋씩 입장을 한다. 나는 그들을 앞자리에서도 관찰하고 싶고, 뒷자리에서도 지켜보고 싶다.  내 영화를 보고 어디에서 울고 웃고 실망하는지 그 모든 표정을 지켜보고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영화를 즐긴 것도 같고, 아무런 표정 없이 일어서기도 한다. 몇몇 관객이 소감을 나눈다. 가능한 티 나지 않게 가까이 가서 토 하나까지 듣고 싶다. 화장실 빈칸에 숨어 들어가 적나라한 비평까지 놓치지 않고 싶다.



그들은 나에게 실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닌데도 아, 다정하다. 그들은 무심한 듯 다정하다.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할 수 없겠다고 다짐한 나에게, 그들은  영화를 만들고 극장에 걸어 보라고 기운을 준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시작해볼까. 적어도 관객이 나 혼자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은 나란 사람은, 누가 뭐래도,  뭐래지 않아도 이야기를 사랑하니까.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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