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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26. 2022

풋풋함을 가득 담아 조물조물 무치면

문장과 세계 #16


주말에 연차를 붙여 쉬기로 했다. 연휴에는 분주했던 마음이 넉넉해진다. 미루고 미뤘던 미용실에도 다녀오고, 주중에는 건너뛰던 아침식사를 위해  빵집에도 들러 양껏 담는다. 3일 점심, 저녁이면 적어도 다섯 끼는 집에서 먹게 된다. 연휴 동안 한 발자국도 문 밖에 나가기 싫을 기분을 대비해서 식재료도 미리 준비해 놓아야지.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비장하게 동네 마트로 향한다.



채소 가격이 한창 오르더니, 오늘은 보이는 것마다 싱싱하고 저렴하다. 달걀과 어묵, 아이스크림을 제외하면 장바구니는 채소밭이 되었다. 오이와 애호박 하나씩 담고, 시금치는 무쳐도 먹고 국도 끓이려고  묶음으로 담았다. 채소 담당자님께서 지금 담은 시금치가 더 많으니 바꿔 가져 가라고 하셔서 고맙게 넘겨받으며 웃음을 교환했다.



상추는 또 왜 이렇게도 귀여운 건지. 게다가 포기상추다. 한 잎씩 따 먹는 재미도 있고, 겉잎이 보호해주어 더 싱싱서 포기상추는 볼 때마다 데려가고 싶어진다. 알록달록 꼬맹이 파프리카도 눈에 들어왔다. 과일만큼이나 달짝지근하고 상큼한 파프리카여서 늘 많이 사두고 싶은 욕심이 난다. 아기 상추와 파프리카 담고 나니 그 옆에 반가운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호박잎 한 묶음에 2,000원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 왔는데, 고향 도시에서는 흔했던 호박잎을 서울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단독주택에 살 때는 화단에서 키우는 호박잎을 따다가 쌈이며 된장찌개를 자주 해주셨다. 동네 담장마다 커다란 호박잎과 노 꽃, 라면처럼 또르르 말린 덩굴이 여기저기 풍성기도 다. 밥상에 종종 올라와서 맛있는 줄도 몰랐던 호박잎여기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보게 되니 볼 때마다 반가워서 얼른 집어든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담았다. 다 먹지 못할 것 같아 먼저 담았던 양상추와 브로콜리는 제자리에 반납한다. 그러고도 바구니가 무거워져 혼자 들고 갈 수가 없다. 준비한 장바구니는 무용지물이 되고, 커다란 배달용 비닐봉지에 식재료들이 담긴다. 되도록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자주 들러야 하는데, 게으름이 문제다. 반면에 자주 들르면 그만큼 간식을 많이 사게 되는 문제도 생긴다.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리는 중에 배달 도착했다. 엊그제 우편으로 받은 종이 신문을 재활용으로 내놓기 싫더니 호박잎을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신문을 좍 펴고 호박잎을 다듬는다. 본 건 있어서 대 끝을 살짝 꺾어서 죽 당기면 꺼슬한 줄기 겉껍질이 벗겨져 나간다. 싱싱한 잎은 쪄서 쌈으로 먹고, 줄기와 시들한 잎은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려고 구분해 둔다.



상추와 오이는 간장이랑 식초,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새큼하게 버무리고 시금치는 들기름과 깨소금으로 고소하게 무쳐 놓는다. 캔 뚜껑을 경쾌하게 따서 참치를 덜어내 다진 양파와 청양고추에 된장 한 큰 술을 넣어 볶은 것이 오늘의 주메뉴다. 호박잎과 싸서 먹으면 제대로 꿀맛이지. 1.3컵만큼 밥을 해서 푸릇푸릇하게 소박한 한 상을 차려 먹자. 악, 배고파.




Photo : pixabay.com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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