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는 말을 좋아한다. 책의 세계, 서랍 속 세계, 고양이의 세계, 애호가들의 세계... 이런 말들은 신비로움과 매력이 가득한 시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라는 세계》는 제목만 듣고도 가슴이 뛰었다. 초록, 주황 배경 속 동글동글한 어린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썹, 그 귀여운 표정과 몸짓에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보다가 생각보다 단단한 어린이들의 말과 생각에 놀라고 때로는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어린이 시절에는 억울한 일이 참 많았다. 나를 평가하고 지시하는 이들의 태도는 그럴 만한 자격을 갖고 있지 않아 보일 때도 있었다. 그 억울한(?) 시절, 어린이의 편에 서서 힘이 되어 주는 어른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 몰래 용돈을 쥐여주는 삼촌, 영화 <미나리>에서처럼 금기된 놀이에 초대하는 할머니, 그리고 이 책을 쓴 김소영 선생님처럼 정중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들어주는 분들 같은. 어린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어른의 존재는 양육자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에 소개된 현성이와의 일화를 읽고, 왜 빠른 것만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자람이가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안목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고 어린이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은, 다양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어린이가 늘 배움을 강요당하는 반면, 어른은 배워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존재다. 이 책을 보고 부끄러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른들은 기대보다 현저히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어린이 해림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있고, 모든 타자는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엄연한 타자인 어린이는 으레 존중받지 못한다. 모든 관계의 기본인 존중, 그것을 유독 어린이에게만은 예외로 해 왔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환대하고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현우의 '놀기' 계획에 담긴 의지, 그리고 예측 불허의 과정에서 나오는 재미와 배울 점에 대한 작가의 견해에 공감한다. 더불어 이 시대 아이들이 놀거리를 어른들의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조금 우려도 된다. 작가인 제럴딘 브룩스는 요즘 장난감이 정해진 형태여서 상상의 여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엄기호 작가 역시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공터가 아니라 푹신한 쿠션으로 보호되는 놀이방일 경우 세계를 탐구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작가는 어린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공간'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음껏 '놀기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공간,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서도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공간,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쿨존은 어른과는 다른 어린이의 감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아이들과 어른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 노키즈존은 경험을 할 기회를 박탈하는 공공연한 차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위험과 삭막함을 두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위험은 그냥 두고 어린이가 없어지는 것이 답일까? 아이들에게 힘든 세상이 다른 이에겐 괜찮을까? 어른들에게는 불편하고 부당한 일들을 어린이에게 물려주지 않을 책임이 있다.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냉소나 반대말이 아닌 '옳은 말'을 찾으려는 글쓴이를 응원한다. 나 역시 조금은 냉소적인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선을 맞추고 조금 더 넓은 품으로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이'로 자라고 싶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그 한 걸음을 보태 본다.
책 정보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글, 사계절 펴냄
함께 읽은 책 :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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