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전 과정에서 지리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문화는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기후 그리고 생산물을 교역할 길을 따라 발전해 왔다는 것, 교역은 남북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에 더해 팀 마샬의 《지리의 힘》에서는 세계의 지리와 지형을 더 깊이 탐색한다. 물자를 이동할 육로와 하천, 해협, 부동항의 유무에 따라 각 나라의 경제 발전의 차이가 어떠했는지 살피고 평야와 산맥, 사막과 같은 천연 장벽이 어떻게 나라를 지켰는지 설명한다. 또한 건설 능력과 주변 강대국의 유무도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요소로 보았다.
저자는 세계를 총 10개의 지역으로 나누었고, 현재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순서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다뤘다는 점이다. 2020년 IMF와 미국 CNBC가 분석한 <세계 경제 규모 상위국> 자료를 보면 미국에 비해 중국은 30% ~ 70% 수준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아직 미국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경제 성장의 욕망과 성장세가 그만큼 뜨겁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반면에 세계 경제 규모 9위의 캐나다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지리적인 특색이 크지 않아서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라고 말했다.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 산맥을 뚫는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지리는 여전히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얼마 전에 발생한 수에즈 운하 사고를 보며 공감이 되었다. 강대국들이 왜 그 많은 땅을 두고도 분쟁을 일으키며 영유권을 주장하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분쟁 지역에서는 여전히 세력 다툼을 하고 있다. 강대국을 주변에 둔 전략적 요충지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륙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중국은 넓은 평원과 동서, 남북을 가로지르는 강을 갖고 있음에도 북쪽 사막과 서쪽 산맥에 가로막혀 육로 개척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해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과 대만, 필리핀 그리고 껄끄러운 대상인 베트남을 상대해야 한다. 세계를 상대로 값싼 상품을 팔기를 원하는 중국에 판로는 필수적이지만 지리적 한계 때문에 티베트, 신장, 센카쿠 열도, 홍콩과 대만 등을 확보하려고 무력 충돌과 인권 유린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더불어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적극적인 투자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다음으로 소개된 미국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지리적 이점으로 경제 규모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는 나라다. 넓은 땅과 평야, 온화한 기후,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교역로에 주위에 경쟁 국가마저 없다. 텍사스와 알래스카까지 쉽게 얻음으로써 자력으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 대상으로 주시하지만 두 나라는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기에 미국을 따라잡기는 아직 힘들어 보인다. 다만 저자가 지적한 대로 미국의 인구 구성에서 아시아계와 히스패닉 계열이 늘어남으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서유럽이 과거부터 문화경제적 우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온화한 기후와 경작에 유리한 토양, 교역에 유리한 지형이 있다. 여러 산맥과 강으로 나뉜 복잡한 지형으로 인해 여러 나라들로 갈라져 있고 편차도 크다. 유럽을 크게 나누면 넓은 평원과 대서양에 인접한 북부는 부유하고, 그렇지 못한 남부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러시아를 사이에 둔 동부 지역은 강대국들의 욕망에 오랜 세월 동안 희생되었다.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을 통해 많은 부를 얻었지만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유럽 국가들은 전쟁 재발 방지와 경제 재건을 위해 유럽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금융 위기와 영국의 탈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외의 경제 상위국들은 저마다 큰 지리적 한계를 품고 있다. 러시아는 가장 넓은 국토를 소유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지만, 부동항을 얻기 위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위험요소 사이에 있는 섬나라 일본은 고립의 한계를 넘기 위해 제국주의를 꿈꿨고, 한국은 세 강대국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여 전쟁터가 되어왔으며 분단 상황은 예측이 어렵다. 라틴 아메리카는 접근이 어려운 아마존 지역과 수로의 부재로 교역에 어려움이 있고, 미국의 견제를 받는다.
아프리카 역시 항구와 수로가 부족하고 사막 지역 때문에 운송이 원활하지 않다. 나일강과 수에즈 운하를 가진 이집트도 나무가 부족하여 건설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에 비해 석유가 풍부한 중동 지역은 부유하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종족 간의 갈등도 있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와 자의적으로 만든 국경선 때문에 더 큰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주의의 잔재와 부의 편중, 종교적인 분파 싸움과 민족적 갈등, 높은 실업률 등으로 야기된 불만은 급진적인 무장 단체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내전이 계속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며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리적으로 유용한 지역을 차지하려는 무력 충돌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는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 관계, 탈레반의 뿌리와 미국의 역할이었다. 뉴스로만 접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배경을 알 수 있었고 각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하는 주장과 사실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 시간이었다.
2023년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이기적인 행동이나 독보적인 성장은 주변국에 위협이 되고, 충돌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지난 세기에서 큰 대가를 치르고 경험했듯이 그 결과는 희생과 아픔뿐이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결정이 세계 흐름을 좌우하려 한다. 이렇게 전쟁 외에도 지구 온난화, 수에즈 운하 사고 등 역사가 증명하듯 지리의 영향은 주변국을 넘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을 각국의 정부와 세계 시민 모두가 심각하게 인지하고 함께 협의해야 할 때다.
책 정보 : 《지리의 힘》 팀 마샬 글, 김미선 번역, 사이 펴냄
함께 읽은 책 :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글, 김진준 번역, 문학사상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