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의 자살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은퇴 후 아파트 경비직과 계약직으로 일했던 경험을 쓴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조정진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아파트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이라는 세 유형이 있었으며, 소수의 괴롭힘은 ‘진한 후유증을 남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방관하는 ‘무관심한 다수’를 위한 책이다. 이를 위해 책 제목에 모순되는 단어를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작가의 실수 경험을 프롤로그에서 제시했다. ‘결정 장애’라는 말은 나도 종종 사용하곤 했는데,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여 앞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인권, 평등, 차별 그리고 혐오 논쟁의 맥락을 살펴보면 복잡하기 그지없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한 개인이 다차원의 입장에 있으며,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문제 제기를 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드러나지 않은 차별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많아지는 이유는 사회가 양극화되는 부정적 측면과 인권 의식이 개선되는 긍정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차별은 권력에서 비롯된다. 권력을 점검할 수 있는 질문이 책 안에 있다. 바로 호명과 웃음의 권력이다.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호명되거나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호명하고 있는지’와 ‘농담에 누가 웃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임계장 이야기》에서 저자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의미의 호칭에서부터 차별을 느낀다.
청소년 소설 《드림 하우스》의 보람이는 유명인인 아빠가 육아를 하는 TV 프로그램을 불편하게 느낀다. 슈퍼맨 같은 아빠를 둔 아이들이 넓은 집에서 사랑받는 것을 보고, 부모 없이 무너져가는 집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더욱 비참해진 것이다. 실제로 방송되고 있는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보고 즐거움이나 약간의 부러움을 느낀다면 권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차별은 ‘나의 언행으로 누군가가 고통을 느끼는가’로 점검해야 한다. 나의 경우 ‘이 이야기를 불편해할 사람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해 보고, 대상을 섣불리 일반화 · 범주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배워 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 역시 여전히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나는 약자 입장에 있기도 하지만 다수의 카테고리에서 권력을 가진 쪽으로 분류될 수도 있으므로.
개인차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과 같은 ‘구조적 차별’이다. 비정규직은 삶을 계획할 수 없게 만들고, 사람을 도구로 만든다. ‘임계장’처럼 차별 대우를 고스란히 받고 몸과 마음이 멍들기도 하고, 김혜진 작가가 쓴 《9번의 일》에서처럼 일터에서 내몰리지 않기 위해 타자를 억압하는 사람이 되어가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집단의 병리적 사고화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첫 번째는 양극화이고 두 번째는 둔감화, 세 번째는 집단 간 적개심이었다. 구조적 · 조직적 차별은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책임을 약화시키고 차별을 어쩔 수 없이, 그러다 보면 당연시하게 만든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단 안에 나처럼 욕망을 가지며 고통을 느끼는 개별적 ‘사람’, 나아가 ‘존엄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은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
차별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해 저자는 변화에 대한 의지, 법의 불완전성, 범주화의 문제, 차이의 인정, 차별을 직시할 용기, 차별 금지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더불어 평등 사회를 향한 우리의 노력이 ‘차별받지 않기 위한’ 것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보태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진전에 대한 상호 간의 인정’과 ‘느슨한 연대’다.
스티븐 핑커는 폭력이 감소된 역사를 다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시민권, 여성권의 혁명이 시작되었지만 비교적 짧은 시기에 어린이, 소수 인종, 동성애자, 동물과 같은 취약한 계층에까지 권리 혁명이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더 나은 목표를 지향하는 특징 때문에 진전을 부정하는 권리 혁명의 특이성을 지적했다.
‘진전에 대한 상호 간의 인정’은 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차별 요소가 개선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 단체와 역차별만 주장하는 남성 단체 사이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기는커녕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성과 없는 투쟁이 계속되기는 어렵다. 현 상황에서 존재하는 차별,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화해 온 과정을 객관적으로 통계화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느슨한 연대'의 필요성은 윤이형 작가의 《붕대 감기》를 읽고 느꼈다. 같은 조건에 놓였던 사람들, 어떤 것에 동질감을 비친 사람들끼리도 경험과 생각은 제각각 다르다. 급진과 온건으로 나누다 보면 연대는 무한히 쪼개질 수밖에 없다.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침묵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그 배경을 상상하려는 노력 없이 비난하는 것 또한 폭력이 된다.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 윤이형, 《붕대 감기》 중에서
《임계장 이야기》를 읽은 후 조정진 작가가 성추행 사건으로 사회적 약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사건을 지켜보았다. 김지혜 작가가 말한 '한 개인이 다차원의 입장'에 있는 사례이자,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 이들의 도덕적 결함에 더욱 엄격한 잣대가 매겨진다는 사실의 본보기다.
《부활》의 네흘류도프는 스스로의 추악함을 깨달은 후부터 타인이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통해 나 역시 스스로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성별, 나이, 타고난 특징, 성적 지향, 인종, 종교, 출신지와 주거지, 직업 등으로 인해 환대받지 못하는 이가 없는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려면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을 감지하고 개선해 나갈 개인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책 정보 :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펴냄
함께 읽은 책 :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후마니타스 펴냄
《부활》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9번의 일》 김혜진, 한겨레출판사 펴냄
《붕대 감기》 윤이형, 작가정신 펴냄
《드림 하우스》 유은실, 문학과지성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