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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07. 2022

완벽함 대신 긴 생명력을 얻은 영웅들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최고의 책을 꼽았다. 이와 같은 추천사가 붙은 책이라면 흥행에 큰 도움이 되었겠다. 나 역시 읽기를 미루다 이 찬사에 이끌리고 말았으니.


그리스어로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영어식 표기로는 플루타르크인 지은이는 그리스 명문 출신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였다. 기원후 45년에 태어나 120년 전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며, 아테네에서 공부하고 로마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이 책의 원제는 <비교 열전>으로, 그리스와 로마 영웅 중에서 유사한 50인을 선정하여 일대기를 묶어낸 책이다.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교하기 위해 번갈아 기술하였고, 이에 따라 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과 로마식 표기가 병행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테네를 건설한 테세우스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비교
스파르타의 정치가 리쿠르고스
로마의 왕 누마 폼필리우스
리쿠르고스와 누마의 비교




일상이자 일터였던 전쟁

당시에는 전쟁 영웅이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전쟁을 신의 뜻으로 생각하고 일거리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 모습이 엿보인다. 로마 제3의 창건자로 칭송되었던 마리우스도 전쟁이 중단된 상태를 불안해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대목이 나온다. 다른 나라를 위해 싸우며 보수를 받는 용병도 일반화되어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반, 스파르타의 봉급이 오르자 아테네의 병사들이 하룻밤 새 스파르타로 넘어갔다는 일화도 볼 수 있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것처럼 이 시대의 로마인들은 전쟁을 하늘의 명령으로 여겼다.
- 마르켈루스 편
그는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된다면 자신의 세력과 명성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전쟁을 일으켜 명예를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 폰토스의 왕이 전쟁 준비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노여움을 자극했다.
- 마리우스 편


반쪽 민주주의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왕이나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도 있었지만, 주로 각 계층의 시민들이 투표로 집정관이나 독재관을 선정했다. 테세우스는 최초로 민주 정치를 위해 왕의 자리를 내놓고 화폐에 자신의 모습이 아닌 황소를 새기게 했다. 민주주의가 활성화되었으나  평등한 사회는 아니었다. 노예와 계급이 존재했고, 아테네의 경우 부모 중 한 사람만 아테네 사람이 아니어도 미천하게 생각했다.


당시에는 독재를 매우 경계했다. 스파르타는 같은 사람이 사령관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독재를 막기 위해 두 명의 왕을 두기도 했다. 아테네에서는 한 인물이 권력과 명예를 독차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도편 추방 제도를 이용했고, 정치범들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형벌을 행했다. 도자기의 파편에 투표를 했다고 하여 이름 붙은 도편 추방에 걸리면 10년간 국외로 추방이 되었다. 이로 인해 경쟁자를 비방하거나 음해하기도 하고, 추방된 후 알키비아데스처럼 적의 편에 서는 폐단도 생겼다.


겸손과 도덕성 중시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자신의 성공이나 행운을 지나치게 장담하는 사람에게는 천벌이 내려진다고 믿으며 자만과 교만을 경계하고,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에 근거하여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의 성공담뿐 아니라 실수와 실패, 부족한 덕성까지 아울러 기록했다. J.W. 랭혼은 《플루타르코스의 생애》에서 "인간의 관습을 묘사하는 데는 플루타르코스가 가장 뛰어나다. 그의 도덕적 탁월성은 보다 명확하고, 그의 정신에 관한 서술보다 뛰어난 작품은 없다"라고 평가한다.


화가가 아름다운 얼굴을 그릴 때 허물이나 결점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 (...)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사람의 고상한 행동, 장점, 감정, 실수나 잘못 등을 자세히 묘사해야 한다. 아직 자연은 완전한 미덕을 갖춘 인간을 창조해내지는 못했다.
- 키몬 편
그들이 감히 자기와 비교하는 신들은 영원성이나 권력, 덕성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거룩한 것은 덕성이다. 불, 바람 같은 자연은 영원성을 가지고 있고, 지진이나 천둥, 태풍이나 홍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의와 공정함은 이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신만이 가질 수 있다.
- 아리스티데스 편


플루타르코스는 역사학자로서의 임무를 가지고 이 책을 썼지만, 역사 기록만으로 알 수 없는 숨은 이야기들까지 기록했다. 그의 저술을 통해 영웅들의 일대기와 성취, 과오 당시 사회의 생활상, 문화, 정치, 도덕에 근거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덕분에 2천 년이 지난 후대에 이르러서도 현재의 관점으로 인물들을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발견했다.


플루타르코스는 남을 위해서 영웅전을 쓰기 시작했다가 점점 영웅들을 가까이 느끼고 감동하고, 훌륭한 것을 본받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오래 전 그도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수양다고 생각하니 시대를 초월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철학의 장점 중 하나는 그 생명이 길다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점을 한껏 누렸을 것이다."라고 말한 J.W. 랭혼의 말에 공감하며 긴 독서를 마친다.




책 정보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1》 플루타르코스 글, 이성규 옮김, 현대지성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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