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Apr 04. 2022

톰 소여는 없고 허클베리 핀은 있는 것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이 이야기에서 동기를 찾고자 하는 자는 기소되리라.
교훈을 찾고자 하는 자는 추방되리라.
줄거리를 찾고자 하는 자는 총살되리라.


독자에게 전하는 협박과도 같은 경고는 무엇 때문일까? 두 소년의 유쾌한 탐험 이야기는 어떻게 <미국 문학 불멸의 걸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을까? 헤밍웨이는 어떤 이유로 마크 트웨인으로부터 미국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을까?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인들이 자유를 찾아 나선 땅이자, 영국의 식민 상태에서 독립을 이룬 나라였기에 자유와 개척은 미국의 건국 정신이 되었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갈망하는 ‘자연 속에서의 모험’과 보물을 발견하고 싶은 ‘일확천금의 욕망’은 이러한 미국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이야기의 흐름과 집필 순서는 《톰 소여의 모험》이 먼저이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나중이지만 이 책에서는 의도적으로 마크 트웨인의 주요 사상을 드러내는 작품을 먼저 배치한 것으로 보다. 말년에 쓴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양심’의 문제를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다. 익살로 시작하여 풍자를 거쳐 진지한 철학으로 이어지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 흐름은 자유와 평등을 거쳐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귀결되는 듯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허크 홀로 다시 길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소년 모두 모험을 사랑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톰 소여는 명예를 원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려는 욕망이 있다. 때때로 인습에 젖어 일을 까다롭게 만들기도 다. 톰은 사회 속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에 반해 허크는 온갖 고생으로 얻은 돈도, 구속하는 가족도 포기해 버리고 그저 ‘자유인’이기를 선택다.


허크는 도망 노예 짐을 돕고, 함께 여행하게 된 사기꾼 ‘왕’과 ‘공작’의 우스운 행동을 알면서도 조롱하지 않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다. 이 정중함은 물질과 명예만을 추구하는 두 사람을 효과적으로 풍자한다. 허크가 짐과 사기꾼들을 존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다른 자신만의 가치관 때문다. 허크 돈과 명예에 욕심이 있었다면 사기꾼들을 경멸했을 것이며 톰과도 친구가 될 수 없었을지 모다.


허크는 문명과 교육을 거부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터부를 중요하게 생각다. 터부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자 거부의 대상이 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금기’라고 정의되어 있다. 허크에게 작용하는 금기는 인간 사회가 아닌 자연이 힘에서 기원하는 것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인간의 표본다. 사회 속에서 허크가 버릇없고 나쁜 아이인 이유는 부모에게 못배워서가 아니라 종교나 교양이 그에게 삶의 가치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두 원수 집안의 전쟁 속에서 도망쳐 나오고, 막대한 유산을 둘러싼 사기극과 암투를 겪으면서도 허크는 인간에 대한 선의를 지켜내고 자연인으로서의 윤리를 따다. 문명의 더러움은 허크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안식을 찾다. 짐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역시 오직 뗏목뿐이기에 허크와 짐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



다시 저자의 첫 당부로 돌아가 다.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강조와 익명의 장치가 필요했던 이유는 이 책에 담긴 가치관이 시대 인식과 달라 논란이 예상되었기 때문일 것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이 소설들은 각각 1876년과 1884년에 발표되었다. 1960년에 출간된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에 대한 차별과 편견 문제가 심각했음을 보면서, 마크 트웨인의 사상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 알 수 있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은 왜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에게는 자신들의 사상을 적용하지 못했을까? 마크 트웨인은 소설을 통해 이러한 모순을 고발하며 인간에 대한 고찰로까지 끌고 다. 반면, 아메리칸 원주민, 즉 ‘인디언’을 야만인이자 범법자로 그렸다는 것은 비판적인 관점으로 보게 다.


함께 실린 ‘마크 트웨인의 생애와 작품’에는 속어와 방언을 두루 사용한 작가의 자유분방한 문체가 이후의 미국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말 번역에서는 미국의 방언을 경상도와 충청도 방언으로 바꾼 것이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되어 아쉬움이 남다.


두 소년의 긴 여정, 그리고 노인과 청년의 문답을 따라오면서 고민스러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노인의 논리가 너무나 그럴듯해 인간은 진정 외부 환경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존재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고발한 것은 변화의 가능성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희망을 품어 다. 인간 존재의 보잘것없음에 지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증거가 바로 문학일 거라고.




책 정보 : 《허클베리 핀의 모험/인간이란 무엇인가》 마크 트웨인, 동서문화사

함께 읽은 책 :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열린책들

Cover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SF 소설의 90%는 쓰레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