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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21. 2022

글쓰기의 감정 곡선

브런치와 함께 하는 아침


할 말이 이렇게 많았던가. 내가 보아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수다스럽다. 이렇게 많은 말들을 품고 있었다니. 오랜 말들이다. 긴 시간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며 내재되었던 텍스트들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 간다. 문장 조각들, 단어들, 그 해묵은 퍼즐이 적절한 곳에 딱 들어맞을 때 쾌감을 느낀다. 때로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기도 지만.


독서 후 내용 이해를 돕는 전략 중에 ‘감정 곡선’이라는 활동이 있다. 책 속 등장인물의 일대기를 살피면서 감정을 그래프로 그려 보고, 이를 통해 인물의 삶을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는 전략이다. 긍정과 부정, 기쁨과 슬픔을 넘나들며 굴곡이 지는 그래프를 일컬어 ‘아리랑 곡선’라고도 한다. 이런 감정 곡선은 읽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쓰다 보면 열 가지도 넘는 감정 변화가 일어난다. 초조하고 막막했다가 신이 나고, 혼란스럽고 답답했다가 다행이다 싶어진다. 이런 폭풍같은 감정들이 지나간 뒤, 망설이던 글이 시원하게 마무리되고 발행까지 해 버리면 나에게 벌어졌던 그 혼란을 마침내 살포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발행한 글을 떠올리면 그날의 궤적이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또 다른 고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글에 대한 반응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브런치 입문 초반 며칠 동안은 발행하고 난 뒤, 가슴 속에서 긴장과 설렘이 뒤엉켰다. 누군가에게 빈틈없이 읽히고 정확히 이해받고 싶은 욕구였다. 진정되지 않는 그 욕구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알림창이 아니라, 작가의 서랍이다.” 이것이 8일차 결심이었다.


그 날 이후로 저 선언을 충실히 따랐다. 알림들이 기다려지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저 말을 되새기며 휴대폰을 닫아 놓고 새로운 글을 읽고 썼다. 먼지인지 알림인지 선명하지 않아 알아보기 어려운 브런치 알림이 그런 면에서 좋았다. 서랍에 완성된 글을 담아 놓으면,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내일이 기다려졌다. 나는 오늘을 살아야 되는데. 그런 강박에 또 글을 썼다. 그렇게 선순환이 되어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다.



쌓인 말들도 많았지만 공감하고 생각을 나눠 주시는 이웃 작가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것은 그 분에게 공식적으로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 허락에 감사하며 답을 하고 말을 건넸다. 이웃 작가님들의 글은 천천히 정제되어 올라으므로, 내가 글을 쓸수록 그분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넘치게 공감받고 충분히 교감을 나누었다.


수십 번 퇴고를 거쳐 완성한 뒤 차마 꺼내지 못하고 묻어둔 글에 대한 아쉬움, 저장을 눌러야 하는데 발행을 눌렀을 때의 철렁한 당혹, 누군가의 글을 오래 기다리면서 느낀 격한 그리움, 그 기다림 끝에 접한 글에서 느껴지는 반가움, 내 글이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깨달음 발견하는 전율. 이런 감정은 오직 브런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나의 이웃들이 한두 해만에 새 글을 들고 나타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어서 좋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집을 나서며 내 책상 앞에 도착할 때까지 책을 읽고, 블랙커피 한 잔을 타서 자리에 앉아 출근길에 머물렀던 문장들을 정리하는 루틴을 오늘도 지속한다. 여유 있던 책 반납 기한이 촉박해지고, 이제 더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도 지만 나쁘지 않은 압박이다. 아침 시간이 글쓰기로 인해 조금 더 분주해져서 동료들이 건네는 차 한잔의 권유도 부담이 될 때, 럴수 다 내려놓고 그들 담소나눈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글쓰기를 이어 나가기로 한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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