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Jul 19. 2022

언어유희를 사랑하게 된 이유


읽기와 쓰기를 즐기다 보니 문장과 사랑에 빠지고 단어가 좋아졌다. 학교 다닐 때 하지 않던 공부도 새삼 하고 싶어졌다. 그즈음 쓸모없는 공부와 쓸모 있는 공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쓸모없는 공부가 우선이어서 역사와 철학 공부, 미술사, 수영, 헬스, 재봉 등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좋은 공부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쓸모 있고 누군가 인정해주는 공부와도 균형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어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을 선택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디자이너가 된 내가 오랜 열망으로 내재되어 있던 ‘문학사’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를 공식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 해외에 나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솔깃했다.



학점은행제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78학점을 취득했고, 실습을 포함한 년간의 과정을 마친 뒤 학위와 교원자격증을 받았다. 이 자격과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도 막막했지만 그저 그 긴 시간들이 단단하게 나를 받쳐주는 게 좋았고, 막연한 쓸모가 든든했고, 인정받았다는 것이 좋았다.




막상 이론 수업을 들어보니 공부가 만만치는 않았다. 모든 개론들은 지루했고 대조언어학과 발음교육론, 어휘교육론은 그저 난해했다. 그나마 ‘외국어로서의’가 붙은 이해교육론과 표현교육론, 교육심리학과 사회언어학이 흥미로웠다. 의외로 재미있었던 과목은 지도 실습이었다. 교사가 되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떨렸지만, 좋아하는 주제를 선정해놓고 보니 자료를 조사하고 교안을 만들면서 재미를 느꼈던 것이다.


언어학이 딱딱하다 보니 보니 〈언어유희를 활용한 한국어 학습〉을 주제로 삼았다. 언어유희는 전통적 문학 텍스트에서부터 랫말, 광고, 온라인 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텍스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에 학습자의 동기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주제이면서 문화적인 이해도 함께 할 수 있는 학습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조사했던 몇몇 자료를 꺼내 본다.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전통적으로 언어유희는 음성의 유사성을 청각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에서 이용되었다. 유사 음운의 반복은 힙합이나 랩의 라임뿐 아니라 옛사람들의 민요나 사설시조, 한시, 판소리, 탈춤, 수수께끼 등 작자 미상의 구술 문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반복되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 단순한 재미를 넘어 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도치는 어구의 순서를 바꿔서 웃음을 자아내는 언어유희다. 위 대목은 《춘향전》에 나오는 변학도의 대사로, 암행어사가 출두하자 당황해서 말이 엉키는 상황을 도치로 표현했다. 이를 이용해서 추락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었다. 이런 자료를 조사하면서 언어유희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풍부한 기지 해학을 담은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중의적 표현이다.〈이태리 면 사무소〉라는 파스타 집 이름에서 한국적 지명을 의미하는 행정구역 단위 '리'와 '면'이 나라 이름, 음식 이름이라는 이중의 의미로 사용되어 웃음을 준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이런 센스 넘치는 작명이 영업에도 큰 기여를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재미있는 유희는 〈회문〉인데, 바로 읽으나 거꾸로 읽으나 뜻이 같은 문장을 말한다.


3음절 : 내 아내, 기러기, 토마토
4음절 : 소주 주소, 다가가다,
5음절 : 다들 잠들다, 아 좋다 좋아, 다리 저리다
6음절 : 주유소 소유주
7음절 : 다시 합창합시다, 소주 만 병만 주소
9음절 : 여보게 저기 저게 보여?
10음절 : 나가다 오나 나오다 가나
11음절 : 다 큰 도라지일지라도 큰다.
14음절 : 다 간다 이 일요일 일요일이 다 간다




대중매체가 일반화되고부터는 시각적 언어유희가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언어유희는 문자, 그림, 그래픽, 영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문자 전송이 제한적일 때는 숫자로 의미를 전달했고, 이후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자로 표정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이 범람했다.



기호·문자적인 언어유희는 형태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같거나 비슷한 형태의 다른 글자로 기호화하여 장식하면서 기표를 생산하는 시각적 유희다. 위 간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히라가나 문자 모양을 활용하여 한글화를 한 것이 재미를 준다. 배우 유아인은 영문자와 한글 낱자를 조합해서 티셔츠를 디자인했는데,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읽힌다는 것이 신기했다.


@ NOHANT


언어유희에는 시대와 유행을 읽어내는 날카로움이 있어야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절묘함, 대중이 공감할 요소가 있어야 한다. 지나친 언어유희는 언어 본질의 의미가 사라지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만, 학습자들이 말놀이를 즐기면서 언어 공부가 좀 더 친근하고 즐거운 것이 되어 학습동기를 향상과 동시에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공부를 마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내게 지도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아마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할 것이지만, 언어에 대한 관심 놓지 않으며 언젠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설레게 하는 정류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