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Once〉의 OST 〈Falling Slowly〉를 배운 뒤, 가능한 한 천천히 연주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다. 매일 한 시간 가까이 연습했고, 소리도 제법 맑게 나서 나름대로 뿌듯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여섯 줄 전체를 잡고 버텨야 하는 바레 코드barre chord를 잡느라 왼손 검지 손가락 아랫부분이 부어오르고 멍이 생겨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가온 수업 시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연습 시간이 길었던 만큼 다른 날보다는 자신이 있었다. 아르페지오 주법을 무사히 지나고 천천히 연주를 이어나갔다. 앞부분 연주를 잘했다고 하셨는데 스트로크 부분에서 선생님은 “F 코드 스트로크는 Fm7 코드로 하기로 했죠?”라고 하시며 악보를 가리켰다.
무슨 말씀인가, 어리둥절해서 살펴보니 수없이 보고 연습했던 악보 위에 선생님이 그려주신 Fm7 코드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 저걸 못 봤다니. 연습하지 않은 생소한 코드로 연주하자니 잘 되던 연주도 손가락이 꼬이고 박자를 놓쳐버렸다. 보고도 못 본 내가 원망스럽고 열심히 했던 만큼 더 아쉽고 속이 상했다. 그런 나를 다독이려는 선생님의 말씀.
괜찮아요. 저한테 검사받으려고 연습하시는 거 아니죠?
유치원 선생님 같은 말투와 화법에 나는 또 무너지고 말았다. 검사받으려고 연습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검사도 잘 받고 싶었던 건데. 평소보다 자신 있는 날은 뭔가 반전이 있다. 오늘도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연주는 어그러졌으며 아픈 부분만 꼬집히고 말았다. 선생님의 위로를 가장한 딱밤 같은 저 말은 에코 효과를 달고 귓가에서 서라운드로 울려 퍼졌다.
며칠 뒤 회사 동료들과 저녁 자리를 가졌다. 누군가 작은 술집을 예약해 두었고, 각자의 업무가 끝나는 대로 하나 둘 빈 의자를 채워 4인용 상이 찼다. 〈북극곰의 눈물〉이라는 사케 한 병과 안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벌어진 위기의 순간들과 어려움을 겪어낸 뒤 찾은 안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으로는 퇴근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안부를 묻기에 글쓰기와 기타 레슨 이야기를 했고, 누구는 영어 수업에서 좌절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또 다른 동료는 피아노 레슨에서 틀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잘 해내고 싶었던 욕심과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고 한껏 웃었다.
알코올 14.5%로 호록 한 모금만 들이켜도 어깨가 들썩 올라가는 술기운을 머금고서 각자의 좌절을 꺼내놓고 보니 그건 그저 너무나 유쾌한 일들이었다. 서로를 실컷 놀리고 났더니 실패와 좌절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닌 노력과 가능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음껏 놀릴 수 있는 사이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으며, 힘들 때면 폭신하게 기댈 수도 있는 사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글로도 하소연을 풀어내고 있지만, 브런치 계정을 알지 못하는 나의 동료들에게도 가끔 이렇게 실패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 너머 산이요, 우쿨렐레줄 너머 기타줄이 나를 가로막고 있어도 악기를 배우는 일이 즐거운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고, 우리의 날들은 배움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의 배움이 자극이 되고,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는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