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할 때 ‘고양이랑 놀기’와 ‘맘껏 책읽기’만큼 하고 싶은 것이 기타 연습이다. 2주에 한 번씩은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패턴이다 보니 늘 연습 의욕이 고취된다. 퇴근을 하면 많은 집안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씩 해치우고 오롯한 나의 시간이 되는 저녁 여덟시 삼십 분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기타 가방을 열고 악보와 악기를 꺼낸다.
어제는 기타를 치려고 보니 2프렛의 3번과 5번줄에 얼룩이 지고 코팅이 까슬까슬하게 벗겨져 있었다. 기타를 산 게 5주쯤 되었고, 기타줄을 바꾼 건 2주 남짓 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될 만큼 연습을 많이 했단 말인가?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 연습한 게 다인데, 당황스러웠다. 검색해보니 이번에 변경한 엘릭서 포스포브론즈 줄 자체의 특성이라고 한다. 다행히 벗겨진 줄이 연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는 하는데, 신경이 쓰이고 속도 조금 상했다.
얼룩을 발견한 이후부터는 땀 때문인가 싶어 연주하기 전과 쉴 때마다 손을 씻는다. 손을 씻은 뒤 악기를 잡으면 한층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번엔 더 잘 해봐야지,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지, 하고 주문을 왼다. 정장을 입었을 때와 청바지를 입었을 때의 자세가 다른 것처럼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물론 기타는 격식 없는 자유로운 악기이고 연습도 혼자 하는 것이지만 악기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바르게 갖고 싶다.
내 기타가 오기 전에 레슨실에 비치된 기타를 잡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내 기타를 만진 뒤 레슨실 기타들을 잡아 보니 모두 줄에 녹이 슬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악기의 상태를 알고 나니 자주 들여다보고 세심한 관리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연주한 뒤에는 보드라운 천으로 닦아 주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전문 연주자들은 공연을 앞두고는 기타줄을 교체하지 않고 당일에는 손톱도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미세한 변화가 연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나도 그런 의식에 동참하여 레슨 당일에 손톱을 자르지 않도록 미리 정리한다. 그래봤자 실제 연주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겠지만,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나름대로 지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악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존에는 필수적이지 않으나 영혼에는 꼭 필요한 진동을 일으키는 도구. 그리고 음악은 인간이 생산하는 것 중에서 무엇도 오염시키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유일한 것이면서 잠시 생겨났다가 오래 머물지 않고 흩어짐으로써 정신을 정화하는, 흔적없는 주문과 같다고 느낀다. 나의 하루에 이토록 잔잔한 휴식과 여유가 되어주는 이 영혼의 도구를 자주 매만지고 길들이며 소중하게 다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