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22일, 밤 8시부터 10분간 소등 행사에 참여하며 어둠과 만난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며 환경부에서 시작한 캠페인에 교육청과 기업 등 다양한 기관들이 참여했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몇몇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의 경우는 가입되어 있는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별빛지기 조합원님께, 뜨거운 지구와 나를 위한 쉼의 시간 오늘 밤 8시부터 10분만! 약속 잊지 말고 꼭 함께해요.
깜빡하면 잊기 쉬운 이 약속을 지켜달라고 당일 아침에 알림이 도착한다. 그들은 나를 별빛지기라고 불렀다. 그렇게 호명되고 나니 이 약속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무 간단한 일이라 사소하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가능하면 꾸준히 참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6월 22일 저녁,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소등할 준비를 했다. 6월의 오후 8시는 바깥에 어스름한 빛이 남아 있었지만, 집 안의 불을 모두 끄니 창가를 제외한 전체가 어둑해졌다. 낯선 어둠이었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움직임도 고요해졌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조금씩 사람과 사물의 윤곽이 드러났다. 저녁 어귀에 갑작스레 새벽을 만난듯했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사위가 조용해지니 왠지 소리도 내면 안될 것 같고, 휴대폰을 보는 것도 캠페인의 취지 어긋나는 일인 것만 같아 켜지 않았다. 그렇게 10분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읽거나 듣거나 말하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명상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 내겐 좀처럼 없었는데, 그 고요가 나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10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식탁 앞 의자에 앉아 온 동네가 10분의 휴식에 동참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영업을 해야 하는 가게도 있고, 이 행사가 모두에게 알려질 방법도 없으므로 동네로 한정한다 해도 이 도시에서는 상상으로밖에 되지 않을 일이다.
밤늦도록 환하게 빛나는 거리, 복잡한 도시, 어둠을 입고도 노란 빛그물을 번쩍이고 있을 작은 나라. 그렇게 생각을 확장하다가 다시 줌인해서 초점을 맞춰 보아도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그늘진 지구 속, 노란 불빛 안에 아주 작은 점으로 존재할 내가 보이지 않는다. 작디작은 티끌일 뿐인 내가 만든 이 찰나의 이 정적이 달궈진 지구를 조금이라도 식혀줄 수 있을까.
빛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시절에는 계절이 명령하는 대로 사람은 몸을 일으키고 누웠을 텐데. 태양을 등진 뒤편, 어둑해진 공간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오직 별빛만이 나침반이 되는 밤하늘을 그려본다. 아주 깜깜해진 지구에게 하늘은 어떤 무늬의 별빛 샹들리에를 만들어줄까. 오늘 저녁,별들이 조금 더 반짝거릴 순간을 위해 내가 빌린 빛을 잠시 감춰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