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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17. 2022

주기도 받기도 어려운 칭찬


대체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지만 어떤 칭찬은 묘한 의구심을 남기고, 때로는 불쾌해지기도 한다. 유명한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제목만큼은 너무 유명해져서 이 사회가 칭찬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칭찬해야 한다는 원칙은 교육자나 양육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결과에 대한 칭찬은 외적 동기만을 부각시키고 수동적인 태도를 야기할 수 있어서다.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에도 그동안의 노력이 의미가 없어지고, 또한 과정이 어떠하든 성과를 내기 위해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


이 외에도 칭찬에 내포된 몇 가지 비밀을 꺼내 보자. 언젠가 들었던 칭찬 상황이 떠오른다. 먼저 길에서 홍보를 하는 분이 주의를 끌기 위해 건넨 말이 “와, 어려 보이시네요!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였다.목례로 거절을 대신하며 그분을 스쳐 지나오면서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어려 보인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기준을 어떻게 상정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 말이 누구에게나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우습고 그런 허술한 미끼로 낚일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는 속이 빈 칭찬, 입바르고 허울뿐인 칭찬이다.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무마하고자 건네는 진심 없는 말에는 알맹이가 없음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다음으로는 평가가 들어 있어서 불쾌한 경우다. '칭찬'이라는 말 자체에 평가의 의미가 들어있기는 하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어도 자의적인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유쾌할 리 없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보기보다’라든지 ‘생각보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멈칫하게 된다. 이를 의식하다 보면 평가가 아닌 칭찬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칭찬稱讚 (dic.daum.net)
다른 사람의 좋고 훌륭한 점을 들어 추어주거나 높이 평가함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설리가 외모 칭찬이나 지적에 대해 '발견한 것만 이야기하기'라는 제안을 하는 걸 듣고 깊이 공감했다. 발견에는 숨은 의도가 없기에 칭찬을 가장한 평가나 조언이 아닌 신선한 대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날선 평가에 다쳤을 그가 안타깝고, 사려깊던 그를 잃었다는 것이 새삼 아프다.


관계에서 발견은 중요하다. 매일 만나는 동료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표현해 주는 것도 동료의 덕목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머리 하셨네요!'까지 말하고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좋은 칭찬에도 평가가 들어있을까봐서다. 어떨 땐 멋지면 멋지다고 시원하게 말하고 싶기도 한데.




가끔 마주치는 어떤 분은 내게 옷이 멋지다고 칭찬을 건네셨다. 나의 센스를 인정하는 것인가 싶어 처음에는 흐뭇했지만, 같은 방식이 연달아 세 번 반복되자 그런 칭찬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되는지 알 수 없어서 난감했다. 매번 감사하다고 넙죽 인정하기가 쑥스럽기도 했고, 그대로 돌려드리기에도 공허한 칭찬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늘 우물쭈물 하다가 어색해진다.



지나친 겸양도 미덕은 아닌 것 같다. "옷을 참 잘 입으시네요." "에이, 아니에요." 정말 이상한 대답이다. 상대방은 느끼고 떠오른 걸 말했을 뿐인데 뭐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 사람의 생각을 감히 내가 부정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답을 해야될지 더욱 모르게 되어버린다.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우리가 대가를 치르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칭찬도 받은 것이다. 칭찬은 무언가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올라온다. 칭찬에는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잘 모른다. 어색하게 거부하거나 고맙다고 웃는 정도다. 이마저도 반복되면 어색하다.

- 《철학자의 설득법》 중에서


안광복 작가는 칭찬은 '받은 것'이기 때문에 '돌려주어야 하는 부담'이 생기며 제대로 된 칭찬이 아닐 때 주고받기가 어려워진다고 고찰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나는 칭찬을 잘 하지 못할 뿐더러 잘 받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인간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반가웠다.



내가 받고 싶은 칭찬은 구체적인 칭찬, 나를 아는 사람에게 받는 칭찬, 노력한 일에 대한 칭찬다. 특히 악기 연주나 요리, 글쓰기 같은 것은 칭찬도 평가도 대환영이다. 내가 받고 싶은 칭찬이 상대방이 듣기에도 나쁘지 않은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서툴지만 기쁘게 칭찬을 주고받고 싶은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칭찬하고 받기란 더 어려워진다.




인용한 글 : 《철학자의 설득법》 안광복 글, 어크로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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